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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생각하는 착한 디자인 여행 ③ 일회용품과 이별하는 세가지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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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아냐 힌드마치의 에코백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

‘불 꺼라. 종이 아껴 써라. 물 잠가라’ 하시던 어른들 말씀은 어렵던 시절의 근검절약 습관이지요. 이는 오늘날 지구를 생각하는 착한 생활습관과 연결됩니다. 반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아도 공짜라면 무조건 받아 챙기는 사은품이나 당장 요금이 싸다는 이유로 연료효율이 좋은 가스보다 전기난로를 선호하는 태도는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0점입니다. 크리넥스가 일회용 휴지를 개발하고 질레트가 일회용 면도기를 만들면서 자꾸만 쓰는 게 미덕인 미국식 소비주의를 전파한 이래로, 이제는 싸고 편리한 일회용품이 넘쳐납니다. 얼마든지 공짜로 얻는 비닐봉지와 설거지가 필요 없는 종이컵 따위는 돈이 많이 들지도 않고 얼마나 편리합니까? ‘아껴야 잘산다’는 구질구질한 외침에 콧방귀도 끼지 않는 요즘 시대엔 ‘에지 있게’ 아끼도록 유도하는 착한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바이바이, 비닐봉지

따뜻한 햇살이 외투를 벗기듯,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자연스럽게 자원절약 메시지를 전하는 게 착한 디자인입니다. 영국의 가방 디자이너 아냐 힌드마치가 디자인한 장바구니 가방도 그중 하나입니다. ‘나는 비닐봉지가 아니에요(I’m not a plastic bag).’라는 문구를 수놓은 이 가방은 에코와 패션을 버무려 트렌드로 승화했습니다. 2007년 처음 패션쇼 앞자리의 유명 배우와 모델들에게 먼저 나눠주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죠. 우리 돈 만원 정도에 한정판매를 개시한 날에는 여간해서는 요동치지 않는 조용한 영국인들이 새벽부터 수퍼 앞에 장사진을 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답니다. 덕분에 사람들이 장보러 갈 때 비닐봉지 대신 이 가방을 드는 게 스타일리시하고 의식 있는 행동으로 인식됐습니다. 무심코 마구 쓰던 비닐봉지와 자원절약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도 물론입니다. 이래로 각처에서 예쁜 에코백을 나누어주면서 우리 어머니들의 장바구니 운동도 억지스러운 강요가 아닌 패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에코백이 유행이라며 멀쩡한 가방을 두고 몇 개씩 사는 소비자나 브랜드의 마케팅 목적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찍어내는 기업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바이바이, 종이컵

한때 비싼 스타벅스의 일회용 컵을 들고다니는 문화가 유행했었죠. 요즘에는 커피전문점에서 예쁘게 디자인한 보온 커피컵 (텀블러라고 부릅니다)을 판매하면서 조금 번거롭지만 자기 컵을 챙겨 들고 다니는 이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의식 있게 자신의 기호를 표현하며 종이컵을 아끼는 세련된 디자인의 활약입니다. 컵을 직접 들고 가면 음료 가격도 깎아줍니다. 종이컵처럼 생겼는데 도자기로 만들어져 실리콘 뚜껑을 씌운 위트 있는 컵 디자인도 있습니다. 이 컵의 이름이 ‘나는 종이컵이 아니에요(I’m not a paper cup).’라니 아냐 힌드마치 가방 디자인의 착한 영향력이 여기에도 보이는군요.

바이바이, 포장지

연말연시에 주고 받는 선물이 늘어나면서 덩달아 각종 포장 쓰레기도 늘어납니다. 모처럼 마음이 담긴 선물을 포장도 없이 맨송맨송 내밀기는 난처한 노릇입니다. 이때, 우리나라의 보자기 문화를 지속가능한 포장지로 미국에 소개한 디자이너가 있네요. 재미동포 패트리샤 이씨가 한국 방문길에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현대적인 패턴의 다양한 보자기로 선물을 포장하고 나중에는 스카프로 사용하도록 한 디자인입니다.

장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선물을 예쁘게 포장하는 등 인간의 활동에 자원을 아끼는 실천이 자연스럽게 곁들여지기까지 착한 디자인의 힘이 숨어있습니다. 의무감이 아니라 멋있어서 선택했는데 나도 몰래 자연에 착한 영향을 끼치고 미래 세대를 고려한다면 참 즐거운 일이죠.

디자이너 박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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