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 펀드 "유력인사 가입" 소문만 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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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 사장이 조성한 사설 펀드의 실체는 무엇일까.

문제의 핵심은 '정.관계 등 유력인사들이 자신의 영향력과 관련해 사설 펀드에 가입하는 혜택을 제공받았거나 이면 합의를 통해 투자손실분을 보전받았느냐' 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鄭씨의 펀드에 여권의 핵심 인사들이 가입했다" 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물론 여당 및 거론된 당사자들은 "무책임한 폭로" 라며 사법적 대응을 선언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3일부터 3일까지 10여일간 수사를 계속하고 있지만 드러나는 실체는 적고 의문만 많은 형국이다.

검찰은 "수사 중이지만 鄭씨 펀드에 유력인사가 가입했다는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관련자들의 진술도 없었다" 고 말한다.

◇ 의혹 제기 과정=鄭씨가 검찰 출두에 앞서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으로부터 '내가 민주당 실세들과 친하다' 는 말을 들었다" 고 밝히면서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이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민주당 실세 K씨 등의 연루설을 제기한데다 같은 당 이주영 의원이 지난 2일 '사설 펀드에 K.K.K.P씨가 들어 있는 것 아니냐' 며 실명까지 거명했다.

◇ 수사 상황=검찰은 "지금까지 확인한 5개 펀드에 투자자 6백53명이 7백3억원을 투자했다" 고 공식 발표했다.

검찰은 鄭씨의 펀드에 딸린 '새끼 펀드' 까지 합칠 경우 1천억원의 자금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펀드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구성돼 있는 데다 상당수가 자신과는 아무 연분이 없는 사람의 가.차명을 사용하고 있어 실명확인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사설 펀드의 두 축인 鄭.李씨 두 사람을 상대로 가입자들에 대한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구체적인 정치인의 이름은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검찰은 鄭씨 비서실장인 이원근씨와 李씨 측근인 S팩토링 이사 元모씨 등 펀드 모집책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정치인 연루 여부를 캐고 있다.

그러나 평소 '고위층' 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상당액의 투자금액을 모은 것으로 알려진 S팩토링 사장인 吳모씨가 3일 해외도피한 것으로 밝혀져 검찰 수사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鄭씨와 李씨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서로 고위층을 들먹이며 힘 자랑을 한 것이 확대해석된 감도 있다" 고 말했다.

◇ 법률 적용=사설 펀드에 가입한 것 자체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개인들간의 금전거래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또 증권거래법은 금감원 임직원이라도 비등록.비상장 기업체에 대한 주식투자는 처벌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과 공무원이 펀드에 가입, 손실보장 등의 이면계약을 통해 鄭씨의 편의를 봐줬다면 뇌물죄.특가법상 알선수재 등에 해당된다.

또 이 펀드가 주가조작에 이용되는 점을 알고 있었다면 주가조작의 공범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 전망=검찰은 우선 실명으로 사설 펀드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 공직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여 가입경위 등을 캐기로 했다. 가.차명으로 가입한 인사들과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또 鄭씨의 로비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금감원 임직원들에 대한 계좌추적을 통해 역으로 펀드 가입 여부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이 이번 사건을 끝까지 규명하겠다는 의지가 없을 경우 실명이 거론된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은 극히 적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재현.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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