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경력을 보면
좀 과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게도 이젠
올망졸망한 이력들이
눈 위의 발자국처럼 찍혀 가는구나
덜 익은 과일이랄까
덧 기운 옷가지 같아
참 누추하다.
그걸 훌훌 벗어 내던지고
지상에서 가장 어둡고 가장 빛나는 이름인
'시인' 이라는 문패 하나로
영혼의 안방을 밝힐 수 없을까
- 김대규(58) '시인의 이력서' 중
태어나 세상에 쓸모있는 일거리를 하나 얻기도 어려운데, 명함 한장을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는 사람이 있다. '시인' 이라는 이름, 이 사회가 붙여준 것이라면 그것으로 밥벌이가 되어야겠는데 그렇지 못해 또 덧씌워지는 올망졸망한 이력들을 김대규는 훌훌 벗고 싶다. '시인' 이라는 문패 하나로 삶을 지탱하고, 또 영혼의 불까지 밝히며 살고 싶은 것이 어디 그만의 것이랴.
이근배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