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레이스] 미국 '선거 수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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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오는 7일 실시되는 미국 선거에선 대통령.부통령만 뽑는 게 아니다. 전국 50개주에서 선출직 공직자 수천 명이 함께 뽑힌다.

어떤 주는 유권자 한사람이 20여명의 공직자를 뽑고 여러 개의 법안과 결의안.정책 등에 대해 찬반 의사를 표시하는 투표를 해야 한다.

어떤 자리에 누가 출마했는지 얼굴과 이름을 확인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닌데 안건 내용까지 숙지하려면 투표가 아니라 일종의 '선거 수능시험' 인 셈이다.

미국 선거 역사상 투표용지 길이가 4m에 후보 이름이 5백명에 이른 적도 있다고 한다. 미국 선거는 직접민주주의의 완성판이란 화려한 평가를 받지만 그만큼 지방자치를 유지하기 위한 유권자의 숙제는 무겁다고 할 수 있다.

미 대륙 서부해안 맨 꼭대기에 있는 워싱턴주의 사례를 보자. 유권자는 연방 차원에서 대통령.부통령.상원의원.하원의원 등 네 자리에 투표해야 한다.

주(州)단위로 내려오면 상.하 의원, 지사.부지사.총무장관.재무장관.감사관.검찰총장.공공토지관리관.보험관리관.공공질서감독관 등 열한 자리가 유권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주 사법부 자리도 적지 않다. 대법관 네명, 상급.항소법원 판사 한명씩 두명 등 모두 여섯 명이다.

여기에다 유권자는 자신이 속한 시 또는 군(county) 공직자도 여러명 뽑아야 하니 투표대상이 모두 20여명이나 된다.

워싱턴주의 찬반 안건은 이번에 일곱개다. "내년도 공립학교 교사들과 고용원들에게 생활비 변경에 따른 임금조정을 해줄까요 말까요" "특정 신체부위를 잡아채는 덫이나 청산염 같은 독극물로 동물을 잡는 것을 허용할까요 말까요" 같은 질문들이다.

후보들과 주.군 당국은 유권자들이 안건이나 후보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인터넷 웹사이트에는 후보 경력은 물론 투표 대상 안건에 대한 찬반 논쟁이 올라 있다. 유권자들 집으로는 각종 홍보물이 배달된다.

펜실베이니아 암스트롱 카운티에 투표자 등록을 해놓고 연방공무원으로 워싱턴DC에서 일하는 데이비드 밀러는 "선거 때가 되면 고향 부모와 형제들이 후보나 정책에 관해 홍보물을 보내준다" 면서 "후보들이 많기는 하지만 대부분 자주 출마한 사람들이라 그다지 낯설지는 않다" 고 말했다.

워낙 투표용지에 오르는 후보 이름이 많아 주별로 수명~수십명에 달하는 대통령선거인단 후보 이름은 일일이 적지 않는다.

그들은 '○○를 지지하는 선거인단' 식의 통칭으로 등재된다. 그들에게 던져지는 표의 합계가 대통령 후보들의 득표수가 되는 것이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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