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정숙자 '11월과 "식물나라"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내 어린 그림 속 어머니께선

오늘도 들깨 단 털고 계신데, 그때 그

고향 잔등의 가을 풀처럼 하루하루 여윈 어머님

매번, 자리 보아 드리고 오는 길이면

지하철 속에서도 섧던 접동새

먹구름 몰린 이승이어도

몹쓸 일 하지 않고 늙으셨는데

한울님 구구는 주먹구군가

대체 무엇이 이런 것인가

수수밭 돌아보시던 어머니는 어디 계신가

절반도 더 남은 '식물나라'

향내만 맡아보고 또 세워두고 바라보는데

십일월은 다시 오는가

- 정숙자(48) '11월과 "식물나라" ' 중

가을의 어머니는 뒷모습만 봐도 눈이 감긴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허리 구부려 고추를 널고 깨를 털던 어머니를, 그 고향 텃밭의 풍경들을, 이제는 나이가 든 딸은 11월이 오면 다시 떠올려진다. 몹쓸 일 안했어도 어머니를 데려가신 한울님의 구구가 원망스럽다.

쓰다 남겨두고 가신 화장품도 아까워 그 향내만을 맡아보는 마음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꽃인 듯 싶다.

이근배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