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맞춤형 실버극장에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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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우드 극장의 여사장 김은주씨가 27일 오후 영화가 시작하기 전 어르신들에게 상영할 영화를 설명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어르신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실버 영화관에는 다른 영화관에 없는 것이 많다. 영화 시작하기 전에 극장장 김은주씨는 마이크를 잡고 그날 상영하는 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고 주의사항까지 곁들인다. 그 옆에서 아버지 김익환(65)씨는 만담을 늘어놓아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영화관에서는 하루 3회 같은 영화를 상영한다. 집중력이 약한 노인이 잠깐 놓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다음 회를 보도록 하기 위한 배려에서다. 그래서 영화 도중에 자유롭게 화장실에 다니거나 로비로 나와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영화관 입구의 중앙 계단에는 무릎이 약한 분을 위해 손잡이를 설치했다. 당뇨가 있는 어르신을 위해 매표소에는 초콜릿을 비치해 놓고 있다. 영화 상영 스케줄이 적힌 종이는 얇다. 어르신들이 스케줄이 적힌 종이를 접어 지갑에 보관할 수 있도록 일부러 얇은 종이를 썼다.

1969년에 설립된 허리우드 극장의 옛 모습. 오래된 영화를 상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앙포토]

이 영화관은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를 신청받아 상영한다. 외화는 외화판매상을 통해 외국에서 판권을 사온다. 한국영화는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와 저작권 협의부터 거친다. 대부분 고전영화라 옛 영화사 사장을 수소문해 집을 찾아가 동의를 구한다. 이후 영상자료원에서 필름을 빌려 상영한다. 이 필름은 두 번만 상영할 수 있다. 대여료는 7만원. 그러나 김씨는 아예 200만원을 주고 필름을 복사해 온다. 허리우드 극장에서는 노인들이 헷갈리지 않게 일주일 내내 같은 영화를 틀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주 월요일 영화관에서는 아침 조례를 연다. 김씨가 직원들과 함께 외치는 구호는 색다르다. “어르신들은 기억력이 좋지 않으니 계속 묻더라도 짜증내지 말자.”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모 모시듯 하자.” 구호 덕분인지 직원들은 노인들이 입구에서부터 좌석에 앉을 때까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영화관 관객들은 덤으로 얻는 것이 많다. 티켓이 있으면 인근의 음식점·이발소·떡집에서 500원을 할인받는다. 운이 좋으면 영화사나 기업이 주는 사은품도 받는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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