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바이러스와 반세기 (1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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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6. 뱀 소동

실험대상으로 모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뇌염 바이러스는 뱀이나 박쥐와 같은 동물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었다.

요즘에는 뱀이나 박쥐를 흔히 볼 수 없지만 60년대말까지만 해도 지천에 깔려 있었다. 한번은 의정부의 한 초등학교에서 뇌염이 집단발병한 적이 있어 찾아갔더니 교실 지붕에서 수 천 마리의 박쥐떼가 발견돼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었다.

기와를 벗겨내고 손을 넣었더니 박쥐가 한 웅큼씩 잡히는 것이 아닌가. 교실 지붕에서 학생들의 책상 위로 박쥐의 오줌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뇌염유행의 주범이 박쥐였던 셈이다. 지붕을 뜯어내고 박쥐 떼를 쫓아냄으로써 뇌염발생을 막을 수 있었다.

뱀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있다. 사과궤짝에 뱀을 가득 채우면 4백마리 정도의 뱀이 들어간다.

우리는 이 뱀을 우이동에 있는 논바닥을 파고 겨울 내내 월동시킨 뒤 뱀의 혈액에서 뇌염바이러스가 증식하는지 밝혀내는 실험을 했다.

실험을 위해선 겨울잠을 잔 뱀을 대학 연구실로 가져와야 한다. 문제는 뱀도 종류에 따라 알을 낳지 않고 새끼를 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알이야 매일 연구원들이 수집해 소각하니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갓난 새끼 뱀은 실처럼 가늘어 거의 육안으로 구분이 되지 않았다. 결국 사고는 터지고 말았다.

당시 나의 연구실은 서울의대 3층이었고 바로 아래가 나세진 서울의대 학장 방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나학장의 호출을 받고 가보니 책상이며 서가에 조그만 뱀 새끼들이 와글와글 기어다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봤더니 나의 실험실에서 빠져나온 뱀 새끼들이 전기배선을 타고 학장실로 내려갔던 것이었다.

그 중엔 머리가 삼각형인 독사도 있었다. 실컷 야단맞고 죄송하다고 싹싹 빌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이었다.

이 일로 기분이 상해 있던 나학장에게 나는 또 한번 실례를 하게 된다. 어느 해 겨울 실험실에서 퇴근하던 직원이 수도꼭지 잠그는 것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수도관이 얼면 수도꼭지가 열려 있어도 물이 나오지 않는데 다음날 아침 난방이 들어오면서 물이 콸콸 쏟아져나오자 그대로 나학장의 방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부리나케 달려가 봤더니 책상 위의 책이 고스란히 젖어 있었다. 나는 조교시절 당했던, 나학장의 손아귀에 귀를 잡히는 수모를 또 겪어야했다.

그러나 때론 이 뱀들이 중요한 업적을 남기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빠져나온 뱀을 수거해 연구하던 서울대의대 기생충학교실의 이순형교수팀이 뱀의 체내에서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기생충을 발견해 세계학계에 보고하기도 했다.

야외에서 동물을 대상으로 연구가 이뤄지는 만큼 불가피한 사고도 발생했다. 내가 경험한 첫 사고는 미국유학 시절의 것으로 생각된다.

박사학위 과정 중 내가 데리고 있던 조수 중 캐시란 여성이 있었는데 뇌염바이러스를 채취하는 실험 도중 감염돼 뇌염에 걸린 것이었다.

다행히 잘 나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뇌염바이러스의 인체내 잠복기간이 8일이라는 뜻밖의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캐시에겐 안됐지만 그녀를 통해 세계최초로 뇌염바이러스 인체실험이 이뤄진 것이었다. 이 밖에도 박쥐를 잡으려고 산 속에 있는 동굴을 뒤지다가 절벽에서 연구원이 떨어져 골절상을 입는 등 당시 연구는 험난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일본뇌염 연구에 몰두하던 나에게 힘이 빠지는 소식이 들려왔다. 1966년 일본에서 세계최초로 일본뇌염 예방백신이 개발됐다는 것이 아닌가.

일본뇌염 바이러스의 월동기전을 밝혀 뇌염의 전염경로를 차단하고 나아가 예방백신까지 만들어내겠다는 꿈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었다.

이호왕 <학술원 회장>

정리=홍혜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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