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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대화합 핵심은 인사개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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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방을 순시 중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대구에서 '국민 대화합' 을 강조했다.

국민 화합이니, 지역감정 해소니 하는 정치적 수사(修辭)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오던 터라 그냥 흘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金대통령의 이번 다짐 속엔 종전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져 향후 조치들에 주목하게 된다.

노벨 평화상 수상 결정 이후 金대통령은 '화합의 정치' 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었다. 그 뒤 첫 나들이에서 그는 '감정' 이 상해 있다는 영남지역을 방문, 다시 한차례 화합을 강조한 것이다.

노벨상 수상 결정 직후 그에 대한 반응이 지역마다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에 청와대가 당황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지역감정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민생문제와 남북화해보다 지역화합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정부가 지역감정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화합 처방에 적극 나서는 것은 때 늦으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金대통령은 오랜 야당시절 자신을 지역감정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기회있을 때마다 지역감정 해소를 외쳐왔다.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망국적 지역감정을 반드시 해소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임기 절반을 넘긴 현 시점에서 영.호남 두 지역 감정의 골은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번 대구 방문에서 金대통령 스스로도 "솔직히 이 분야에서 성과를 잘 올리지 못했다" 고 실패를 인정했다.

그리곤 "예산배정도 총액은 영남이 호남보다 훨씬 많았어도 여러분 마음을 바꾸지 못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 고 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지역감정의 깊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왔고 그 때문에 뒤틀린 지역감정을 더욱 꼬이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통령의 실패 인정이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다.

지역감정의 핵심은 인사다. 호남편중 인사가 여타 지역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정부 내 요직은 물론 정부투자기관, 심지어 일반기업까지 핵심적 자리에 호남인들이 대거 기용되면서, 특히 역대정권에서 상대적으로 인사우대를 받아왔던 영남사람들은 그만큼 더 박탈감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박탈감이 쌓여 정부의 각종 정책, 심지어 국가적 경사일 수 있는 노벨상 수상까지 비아냥대는 냉소적 분위기가 팽배하게 됐다.

그런데도 청와대 관계자들은 지역편중 인사가 거론될 때마다 전체 퍼센트를 들먹이며 국민의 정부는 공정인사를 해왔노라고 반박해왔다.

반성과 개선은커녕 '눈가리고 아웅' 격 어거지로 일관해왔으니 반발심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金대통령은 며칠 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인사의 공정에 대한 나의 확고한 결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면서 "잘못한 점이 있으면 단호히 시정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화합의 핵심이 인사개혁에 있다는 우리의 인식과 출발점이 같다고 생각하며 획기적인 조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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