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있는 책읽기] 법의 이름으로 인간을 죽일 수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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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형벌-사형의
비인간성에 대한 인간적 성찰
스콧 터로 지음, 정영목 옮김, 교양인
266쪽, 1만2000원

“나는 법을 존중하지만, 그것이 결코 흠 없이 운용되는 것은 아니다. 법은 진실을 찾아내거나 정의를 베푸는 일에 요구되는 신뢰를 보여주지 못한다.”- 스콧 터로

‘깨끗한 전쟁’. 그것은 1991년 시작된 걸프전쟁이, 아니 걸프전쟁을 보도한 매체가 만들어낸 ‘신화’였다. 인공위성과 스마트 미사일, 무인 비행기, 스텔스 폭격기 등 첨단과학기술을 동원해 민간인에게는 피해를 끼치지 않고 군사목표물만 정확히 조준해 타격한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민간인 피해가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한 전투기 조종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CNN은 그런 장면을 보도하기에 바빴다. 오래 전 일이지만 나는 그 조종사의 표정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사형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당에 뜬금없이 그 조종사의 표정이 기억난 건 전쟁과 사형이 지닌 공통점 때문이다. 사형과 전쟁은 모두 인간이 인간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제도이며, 앞서 말한 바로 그 전쟁의 깨끗함은 근대적 사형제도의 은밀함으로 이어진다.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의 맨 앞자락에 치밀하게 묘사돼 있는 바와 같이 근대 이전의 형벌은 그 형벌의 원인이 된 범죄와 다르지 않을 정도로 야만적이었다. 그리고 권력자는 그 형벌을 만인에게 공개함으로써 권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검사 출신 변호사로 소설을 쓰기도 하는 스콧 터로는 『극단의 형벌』을 통해 사형제에 대한 인간적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것은 다양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한 저자의 독특한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법의 싸움터에서 전쟁을 벌이는 경쟁자들 각각의 내부에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여하튼 이 책에서는 법의 오판 가능성, 경찰과 검찰의 직권남용, 처벌의 목적, 범죄의 억제력, 법과 도덕, 사형제도의 사회적 비용, 법률시스템의 비일관성과 계급성 등 사형제를 둘러싼 전통적인 쟁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살인은 타인의 인간성에 대한 절대적 침해이기 때문에 그 어떤 범죄에도 비길 수 없는 범죄이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사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다수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은 복수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질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은이는 사형제가 폐지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사형제도를 옹호하는 듯하면서도 사형폐지론자에 가까이 서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그런 판단을 내린 근거는 주로 사법적인 판단을 내리는 주체로서 인간 역시 불완전하고 인간이 만든 법 또한 불완전하기 때문에 오판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법이 정확하고 예리하다 할지라도 인간 행위의 이면에 숨어 있는 동기와 의도를 명쾌하게 밝혀내는 일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바로 그런 점에서 그는 사형을 두고 비인간적인 형벌이라고 말한다.
최근 유영철이라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이 검거되면서 한동안 관심 밖이었던 사형제가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그 후 인터넷에서 전하는 여론은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사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피해자들 뒤에 숨어서, 그들의 정당한 분노를 내 것처럼 생각하여 우리 자신의 보복 충동을 좀더 편안하게 표현할 수단으로 삼는 것은 아닌가.” 이처럼 사형의 끔찍함에 직접 손을 담그지 않은 사람들이 사형제도를 지지하는 손들이라면 사형제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상당 부분 부풀려진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정일권 (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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