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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립여성합창단원이 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가~았어도…” 정적이 감도는 무대에 가곡 ‘선구자’가 울려 퍼진다. 눈을 지긋이 감고 두 손을 모은채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 면접관 4명의 시선이 고정된다. 지난 14일 서초구민회관에서 진행된 서초구립여성합창단원 모집 오디션 풍경이다.

성악 전공, 합창단 경력 등 쟁쟁한 실력자들 참가

12명이 참가한 이날 오디션은 각자가 자유곡 1곡과 지정곡 ‘선구자’를 부른 뒤 시창(처음 보는 악보를 읽고 계이름이나 허밍으로 노래를 하는 것)을 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심사는 서초구립 여성합창단 지휘자 남철우씨와 단장인 하익봉(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씨 등 4명이 맡았다.

첫번째로 무대에 오른 이는 홍정근(41)씨. 최근 드라마 ‘아이리스’에 삽입돼 인기를 끌고 있는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를 자유곡으로 불렀다. 긴장과 떨림이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났다. 지원 동기를 묻는 심사위원의 질문에“다른 참가자들처럼 합창단 경력도 없고 성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지만 평소 음악을 접하며 생활하고 싶어 지원했다”고 답했다.

오디션을 마치고 무대 뒤로 온 홍씨는 “무대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두번째 참가자의 무대를 지켜보며 “다른 사람들의 실력이 대단한 것 같다”며 낙담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제가 지금 감기에 걸려서 목 상태가 좋지 않아요. 원래 이렇진 않은데…”(김영희·50)“어제 밤에 아들 녀석이랑 싸우다가 크게 소릴 질렀더니 목소리가 잘 안 나와요. 이렇게 까지 안 나올 줄 몰랐는데…”(신혜정·46)

노래를 마친 참가자들이 심사위원들에게 아쉬움 섞인 한마디씩을 남기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심사위원 남철우씨는 “괜찮습니다. 잘하고 계세요. 조금 낮춰 불러볼까요?”라며 참가자들이 긴장을 풀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오디션을 이끌었다.

참가자는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주부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후 3년 간 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는 김계희(41)씨는 “결혼 후 바쁘게 사느라 음악과는 거리를 두었는데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고 나니 나 자신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지원 동기를 밝혔다.

텅 빈 객석 맨 뒷자리, 한 중년 남성의 시선이 무대 위에 고정돼 있다. 참가자 홍영심(49) 씨의 남편 조찬영(53)씨다. “아내는 제가 여기서 보고 있는 거 몰라요. 부담될까봐 몰래 들어와서 보고 있는 거죠. 집에만 있어서 답답할 텐데 합창단에 합격해 보다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며 지냈으면 좋겠어요”

6명 최종 합격 “음악을 나누며 행복 느끼고 싶어”

오디션 닷새 후인 19일, 합격자 명단이 발표됐다. 참가자 12명 중 합격자는 6명. 전문가 못지 않은 노래 실력으로 당연히 통과할 거라 예상했던 사람들이 합격자 명단에선 빠져 있었다. “합창단 경력도 없고 성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어서 걱정”이라던 홍정근씨와 하경혜씨도 합격 통지를 받았다. 지휘자 남씨는 “합창단 단원이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은 ‘조화로움’”이라고 심사 기준을 설명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인 만큼 조화로운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합니다. 노래 실력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는 단체인 만큼 원만한 성격 역시 필요하죠.”

신입 단원이 된 윤성욱(48)씨는 “옛 전공(연세대 성악과 졸업)을 살려 합창단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합창단 활동이 사회 나눔 활동으로도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대학에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나누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며 “노래를 통해 내가 즐겁고 다른 사람도 위안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단원 모집을 통해 6명이 추가돼 현재 합창단원 수는 총 35명. 신입 단원들은 28일 부터 매주 화목요일 연습에 참여하게 된다. 2007년 4월 창단해 다른 구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진 서초구립여성합창단의 이력은 의외로 화려하다. 작년 10월 서울시 여성합창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각종 대회에서 대상 2회, 금상 3회 수상이라는 실적을 쌓은 팀이다. 하익봉 단장은 “지금까지는 합창단 입지를 다지고 실력을 보완하는 데 주력했다면 올해부터는 소외된 이웃이나 어려운 주민들을 돕는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사진설명] ①지난 14일 서초구립여성합창단 모집 오디션에서 참가자 윤성욱씨가 지정곡 ‘선구자’를 부르고 있다. ②참가자들이 대기실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③심사위원 남철우(左)씨는 “합창단원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로운 음색”이라고 말했다.

< 하현정 기자 happyha@joongang.co.kr >

<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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