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제 망신 자초한 미 SAT 문제 유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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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문제 유출 사건이 점입가경의 경지로 접어들고 있다. 서울 강남 어학원 강사가 태국까지 원정을 가 빼돌린 SAT 문제를 미국 내 한국 유학생들에게 넘긴 사실이 적발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이번엔 경기도 한 고교에서 치러진 SAT 시험장에서 시험지를 찢거나 계산기에 문제를 입력하는 기발한 방법으로 문제지를 빼돌린 사건이 적발된 것이다. 경찰 수사에도 아랑곳없이 이런 범죄가 되풀이되니 기가 막힐 뿐이다.

한국에서 SAT 부정행위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 유출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한 외국어고의 SAT 시험장이 폐쇄되거나, 응시자 수백 명의 성적이 무효 처리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교육열에 일대 경종을 울리고 있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런 행태의 기저(基底)에는 내 자식의 점수만 높일 수 있으면 방법은 상관없다는 일부 학부모의 비뚤어진 교육열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태국에서 문제를 빼낸 강사가 일하던 학원이 최근 연 설명회에 비친 몇몇 학부모 모습을 보면 실감이 간다. “내 아이에게도 문제를 빼달라” “미리 문제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강사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니 어이가 없다. 이러니 온갖 수단을 동원해 학부모 요구를 충족시켜 돈을 챙기려는 학원과 강사가 달려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SAT 부정 추태는 명문대 진학에 목매는 학생·학부모와 돈에 눈 먼 학원의 빗나간 행태가 빚은 합작품이다.

SAT 시행사인 미국 교육평가원(ETS)이 문제 유출과 관련해 한국에서 진상조사를 벌인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시험에서 한국이 이런 조사를 받으니 국제 망신도 유분수다. 무엇보다 선의(善意)의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국 내 SAT 시험이 없어지거나 횟수가 주는 것도 문제지만, 한국 학생에 대한 미국 대학의 신뢰도가 떨어져 입학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생겨선 안 될 것이다. 관계당국의 종합적이고 면밀한 대응책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