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안방서 해외주식 거래 글로벌 개미 늘어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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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회사원 K씨(35·서울 목동)는 지난해 해외주식에 눈을 돌렸다. 해외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는 게 아니다. 그는 집 안방에 앉아 미국 뉴욕이나 홍콩 증시에 상장된 기업의 주식을 사고판다. 1998년 주식에 입문한 그는 10년간 국내 증시에서만 투자를 했다. 그러던 차에 2007년 7월 친구의 권유로 해외주식 거래 계좌를 텄다. 처음엔 홍콩 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주식 소량을 사서 묻어 뒀다. 그러다 지난해 초 글로벌 증시가 바닥을 쳤다고 판단해 적극 거래에 나섰다. K씨는 “지난해 홍콩·미국·베트남·캐나다 증시에서 직거래를 해 40% 이상 수익률을 올렸다”며 “지금은 여윳돈의 50% 정도를 해외 거래에 쓴다”고 말했다.

글로벌 증시를 누비는 개인투자자들이 늘었다. 지난해 특히 해외 시장의 수익률이 좋아지면서 ‘해외통’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들은 더 큰 수익을 찾아 전 세계 증시를 훑고 다닌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이 회사의 개인 해외 거래 계좌는 2008년 말 1만1766개에서 지난해 말 1만5967개로 1년 새 35.7% 증가했다. 2008년 2650억원이던 개인들의 해외주식 직접거래 대금도 지난해는 9180억원으로 세 배 반이 됐다. 리딩투자증권의 계좌는 1년 새 50%, 키움닷컴은 20%가량 늘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대신·삼성·대우·우리투자증권 등 10여 개사가 해외 거래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중 신한·리딩·키움 3개사의 시장점유율이 60%를 넘는다.

지난해 국내보다 몇몇 해외 증시 상승률이 높았던 게 고수급 개인투자자들의 의욕에 불을 지폈다. 이들은 간접 투자보다는 직접 투자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코스피 지수는 49.7% 올랐다. 하지만 중국 상하이지수는 80%, 싱가포르 STI지수는 64.5%, 홍콩 항셍지수는 52%나 올랐다. 여기에 해외 주식형 펀드에 대한 불만도 겹쳤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중국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은 평균 56%였다. 같은 기간 상하이지수 상승률인 80%를 한참 밑돈다. 이런 펀드 실적이 성에 차지 않은 투자자들이 직거래에 소매를 걷어붙였다는 게 증권업체들의 시각이다. 신한금융투자 유진관 해외주식팀 과장은 “해외 직거래를 하는 고객들은 대체로 주식 경력 10년 이상 된 고수급 투자자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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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료, 나라별로 달라=해외 직접 투자를 하려면 증권사, 또는 증권사와 제휴한 은행에서 신청을 해야 한다. 거래를 할 수 있는 나라는 증권사마다 다르다. 서비스 대상국은 신한금융투자가 제일 많다. 중국·미국·일본·베트남 등 24개국이다. 리딩투자증권을 통해서는 미국·중국 등 6개국, 키움닷컴에선 중국 등 3개국 주식을 직거래할 수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외국 현지 증권사와 제휴해 직거래 서비스를 하고 있다.

지난해 주가 상승률이 높았던 러시아(128.9%), 브라질(82.7%), 인도(81%) 등은 아직 국내에서 직거래를 할 수 없다. 규제가 까다로워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낙 주가가 뛰는 나라들이어서 직거래를 허용하라는 고객들의 요구가 증권사에 빗발치고 있다. 이로 인해 신한금융투자 등 일부 증권사가 올해 중 브라질 거래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미국·중국·홍콩은 집에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국내 주식을 사고파는 것과 똑같이 온라인 매매를 할 수 있다. 다른 나라는 전화로 주문을 해야 한다. 증권사들은 미국처럼 우리나라와 밤낮이 바뀐 지역 거래를 위해 야간 전화 주문도 받는다.

수수료는 나라마다 다르다. 증권사별로도 차이가 난다. 국내 거래보다는 비싸다. 대체로 온라인 수수료는 거래 대금의 0.3% 이상, 오프라인은 0.7% 이상이다.

해외 주식을 살 때는 증거금 100%가 필요하다. 매수를 하기 전에 ‘매수금 100%+수수료’만큼의 돈이 계좌에 있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해당국의 통화를 계좌에 넣어야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원화를 넣은 뒤 증권사에 요청하면 환전 서비스를 해준다.

투자에 필요한 정보는 HT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다. 전화 상담도 가능하다. 리딩투자증권은 동영상 해외 시황 설명을 수시로 홈페이지에 올린다.

◆해외거래엔 양도세=외국 주식을 직접 사고팔 때엔 주의할 점이 있다. 환율 변동 위험을 고려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또 외국 증시 중엔 한국처럼 ‘하루 15% 이내’라는 등락 제한폭이 없는 곳이 많다. 시쳇말로 하루 만에 ‘대박’을 칠 수도 있지만 ‘쪽박’을 찰 위험도 그만큼 크다.

주식 거래 제도의 차이, 그리고 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주식 매매가 성사된 뒤 결제까지 걸리는 시일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점에도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어 뉴욕 증시에서 주식을 샀다면, 거래가 이뤄진 4영업일 뒤 국내 계좌에 주식이 들어온다. 팔았을 때는 마찬가지로 4영업일 뒤 돈이 입금된다. 여기에 한국과 다른 휴일 제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매매 체결일과 결제일 사이에 현지 휴일이 끼면 결제일이 그만큼 늦어진다. 현지 휴일 때문에 앞선 거래의 결제가 안 돼 돈이나 주식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매수 주문을 내는 실수를 할 수 있다.

해외 주식을 사기 전에 수익률을 가늠할 때는 세금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해외 주식을 사고팔아 1년간 생긴 이익이 250만원 이하이면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250만원을 넘으면 22%의 양도소득세·주민세가 붙는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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