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정치 맥짚기] DJ와 2인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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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공 말기 전두환(全斗煥)대통령이 노태우(盧泰愚)대표를 후계자로 굳힌 결심의 배경에는 '12.12를 같이 했던 의리' 가 있었다.

盧대표는 후계자로 확정되기까지 몸낮춤으로 일관했다. 경쟁자로 비춰졌던 노신영(盧信永)총리의 공관에서 全대통령이 저녁식사를 하면 盧대표는 한강변에 나가 강물을 쳐다보면서 속앓이를 했다.

임기 말 권력의 긴장과 미묘함은 문민을 표방했던 김영삼(金泳三)정권 때도 다르지 않았다. 2인자그룹의 멤버들은 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의식하게 마련인 반면, 레임덕을 의식하는 대통령은 통제의 끈을 죄곤 했다.

1996년 여당인 신한국당 박찬종(朴燦鍾)고문이 정부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방침을 비판하자 김영삼 대통령은 "독불(獨不)장군에겐 미래가 없다" 는 발언으로 견제에 나섰다.

지난 8.30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에 차기를 노린 발언들이 고개를 들자 김대중(DJ)대통령이 "사심없는 사람이 성공한다" 는 말로 제동을 건 것도 마찬가지다.

초점을 대통령과 후계그룹간의 역학관계에만 맞출 경우 DJ의 노벨 평화상 수상 소식은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고위당직자는 "평화상으로 대통령이 더 멀리 달아났다" 는 표현을 썼다. DJ의 노벨 평화상 수상 이후 민주당 내에선 박지원(朴智元)전 장관의 사퇴 등으로 흐트러지는 듯했던 청와대의 구심력이 복원될 것이라는 관측이 늘고 있다.

박병석(朴炳錫)대변인은 "당의 결속력이 더 강화될 것" 이라 했고,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도 "DJ의 정치적 무게가 늘어남에 따라 당분간 2인자그룹의 각개약진은 주춤할 것" 이라고 관측했다. DJ의 당 장악력이 높아지고 친정(親政)을 하려는 의욕이 강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고위원들 중 일부 캠프에선 "좀 더 외곽을 돌아야 할 것 같다" 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의 미국 방문(22~26일),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의 일본 방문(14~17일)등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여권인사들의 해외방문이 눈길을 끌고 있다.

예비 주자 중 한 사람인 모 최고위원 캠프에선 "DJ가 성공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되는 게 야당과의 대결구도가 더 유리할 수도 있다" 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여권내 후계그룹들에겐 DJ의 그늘이 더 큰 무게로 드리워지고 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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