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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애 vs 미셸 위, 올해의 선수놓고 ‘냉정과 열정’ 대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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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호 16면

마치 만화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두 주인공, 신지애와 미셸 위가 두 번째 라운드를 시작한다. 2010년 LPGA 투어에서다.

2010 LPGA 관전 포인트

두 선수의 사연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낮과 밤처럼 둘의 명암이 항상 엇갈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03년 11월, 신지애는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 두 동생은 크게 다쳤다. 15세 중학교 3학년이던 신지애는 광주의 한 병원에서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파티장에서 만난 미셸위(왼쪽)와 신지애.

그때 광주에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여자 타이거 우즈’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셸 위였다. 그는 광주를 거쳐 할아버지가 있는 장흥으로 내려가 거창한 환영 파티를 했다. 두 선수의 2003년은 이렇게 달랐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미셸 위는 융단 같은 페어웨이를 걸어왔다. 그의 집안엔 박사학위가 5개나 된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의 할아버지는 아폴로 13호가 달에 착륙할 때 TV 중계 해설을 한 서울대 교수였다. 하와이대 교수였던 아버지 위병욱씨는 “미셸이 생후 6개월 때 알파벳을 가르쳤고 아홉 살 때 기하학을, 열 살 때 삼각법을 가르쳤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 서현경씨는 미스코리아에 나간 경력이 있다.

신지애는 러프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목사가 됐다. 신자가 몇 명 안 되는 시골 개척교회였다. 신지애가 골프를 하고 나서는 뒷바라지 때문에 목회 일도 접었다. 신지애는 초등학교 시절엔 평범한 선수였다. 중학교 때 호남에서는 두각을 나타냈지만 전국대회에서는 우승을 못 해봤다. 김인경·박인비·최나연 등 또래 선수들에 비해 한 수 아래로 평가됐다.

2004년 신지애는 병원에 입원한 동생들의 엄마 노릇을 하면서 훈련을 했다. 대회 출전비와 교통비 걱정도 짐이었다. 아버지 신재섭씨는 교통사고 보험금으로 빚을 갚고 남은 돈 1700만원이 든 통장을 보여주며 “어머니의 목숨과 바꾼 돈이니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셸 위는 그해 남자대회인 소니 오픈에 나가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여자로선 처음으로 PGA투어에서 언더파를 쳤기 때문이다. “여자 타이거 우즈 정도가 아니라 남녀의 벽을 넘을 수 있는 최초의 여성 선수”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뉴욕 타임스도 어니 엘스도 그렇게 말했다.

2005년 말 미셸 위는 매년 후원금 1000만 달러를 받기로 하고 프로로 전향했다. 그러나 데뷔전인 삼성 월드챔피언십에서 오소 플레이로 실격됐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신지애도 2005년 말 프로로 전향했다. 이듬해 KLPGA 투어 5관왕이 됐다. 박세리·김미현이 세웠던 KLPGA 투어 기록을 모조리 깼다. 그러면서 어둠에서 벗어나 밝은 세상으로 나왔다. 그때 미셸 위는 길을 잃었다. 성벽(性壁)을 깰 선수라는 극찬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도 남자대회 출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거의 최하위로 처졌고 자신감을 잃었다. 엄청난 비난이 뒤따랐다.

신지애가 ‘지존’이라는 칭호를 받고 브리티시 여자 오픈을 포함해 LPGA 투어 3승을 거둔 2008년, 미셸 위는 나락에 빠졌다.

2009년 신지애와 미셸 위는 함께 LPGA 투어 신인이 됐다. 지난해 11월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은 여자 골프의 두 주인공에게 매우 의미 있는 대회였다. 항상 대척점에 있던 두 선수가 함께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미셸 위는 그토록 바라던 첫 우승을 차지했고 신지애는 상금왕을 확정했다.

지난해 3월 열린 J골프 피닉스 LPGA 인터내셔널 대회를 앞두고 둘이 함께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키 차이가 너무 크다”고 신지애가 걱정하자 미셸 위는 무릎을 굽혀줬다. 신지애는 미셸 위에 대해 “앞으로 10년 이상 만날 테니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셸 위는 “나이는 한 살 많아서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너무 귀엽게 생겼다”고 했다.

그러나 속마음까지 화기애애할 수는 없다. 자신이 가장 괴로울 때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상대에 대해 무의식으로부터 깊은 경쟁의식을 느낄 것이다. 둘은 스타일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더 비교가 된다.

신지애는 안정 위주다. 버디를 많이 잡는 것이 아니라 보기를 하지 않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한다. 신지애는 샷이 자로 잰 듯 똑바르기 때문에 퍼팅이 되는 날이면 누구에게도 이길 수 있다. 반면 미셸 위는 장타를 무기로 공격적으로 경기한다.

지난해 7월 3일 코닝클래식에서 둘은 처음으로 같은 조에서 경기했다. 미셸 위는 3번 우드로 티샷한 경우도 많았는데 평균 드라이브샷(270야드) 거리가 신지애보다 평균 22야드가 더 나갔다. 그러나 페어웨이 바깥으로 나간 샷도 많았다. 신지애는 페어웨이 적중률이 92.8%였다. 결국 그린 적중률은 똑같이 83.3%였고 스코어도 비슷했다. 미셸 위는 6언더파 65타, 신지애는 5언더파 66타를 쳤다. 2009년 시즌 전체 기록도 유사하다. 거리에선 미셸 위가 4위, 신지애는 98위이다. 정확성에서 신지애가 2위, 미셸 위는 144위였다.

두 선수는 2010년 LPGA 투어에서 훨씬 더 치열한 대결을 펼칠 것이다. 지난 시즌엔 신인왕을 놓고 격돌했지만 2010년에는 ‘올해의 선수상’을 놓고 다툴 가능성이 크다. 신재섭씨는 올해 미셸 위의 장점이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했다. 바뀐 그루브 규정 때문이다. 새로 바뀐 그루브는 스핀이 잘 걸리지 않아 러프에서 그린에 공을 세우기가 어렵다. 신씨는 “LPGA투어 선수 중 러프에서 볼을 가장 잘 치는 선수가 미셸 위인데 그 장점이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그러나 반대의 예상도 있다.

LPGA 투어는 스타성을 가진 미셸 위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미셸 위가 러프에 가지 않게 코스를 만들면 된다. 페어웨이를 넓히고 러프를 짧게 깎는 방법이다. 코스가 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장을 늘리면 신지애에겐 매우 불리하게 될 수도 있다.

미국 언론은 타이거 우즈 없는 올해 골프계의 최고 스타로 미셸 위를 미는 분위기다. 미셸 위의 성적에 따라 LPGA 투어의 위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신지애가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골프는 장타 대결도, 아이언 대결도 아니다. 잭 니클라우스는 “골프는 두 귀 사이(뇌)의 게임”이라고 말했다. 멘털은 신지애가 앞선다.

상상해 보라. 똑같은 100m 달리기를 해도 평지 트랙에서 뛰는 것과 낭떠러지 옆 트랙에서 뛰는 것은 천지차이다. 신지애는 항상 이런 낭떠러지 앞에서 골프를 했다. 자신은 물론 두 동생과 아버지의 생계,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훈까지 걸고 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승이 걸린 내리막 퍼트에서도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치열함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

이제는 미셸 위도 잡초가 다 됐다. 가장 민감한 시기에 웬만한 사람은 견디기 힘들 비난과 조소를 받았다. 페어웨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셸 위여서 고통은 훨씬 심했을 것이다. 결국 미셸 위는 모든 것을 견뎌내고 일어섰다.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타이거 우즈가 충고한 ‘우승하는 법’을 알았기 때문에 재능은 빛을 발할 것이다.

LPGA 투어는 2월 태국에서 열리는 혼다 타일랜드를 시작으로 10개월간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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