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벨상에서 '성공한' 대통령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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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마침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어제 저녁 오슬로에서 날아온 낭보(朗報)는 DJ 개인의 영광이자 국가의 경사라 아니할 수 없다.

DJ 덕분에 한국도 1백년 만에 노벨상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우리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DJ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보내며 국민 모두와 기쁨을 함께 하고자 한다.

개인적 이해와 당파적 입장을 떠나 축하에 인색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하나만 따도 온 국민이 기뻐하는데 권위와 명예에서 세계 최고라는 노벨상 앞에서 마음 옹색할 까닭이 없다.

선정 이유에서 밝혔듯 노벨평화상위원회는 DJ가 인권과 민주주의, 남북한 화해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DJ는 민추협 의장으로 6월항쟁의 불꽃 한 복판에 서 있던 1987년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돼 왔다.

14년 만인 올해 결국 DJ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는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으로 남북 화해.협력의 물꼬를 튼 공로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DJ의 평양 방문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말했듯 '힘든, 두려운, 무서운 길' 이었다.

그러나 DJ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흔들림 없이 대북(對北) 햇볕정책을 유지해 왔고, 급기야 金위원장과 손을 잡았다. 국민적 지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DJ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그가 걸어온 40년 가시밭길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97년 말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그는 줄곧 야당을 지키며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다. 유신 시절 일본에서 한국으로 납치돼 오기도 했고, 80년에는 신군부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는 등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해 낸 '인동초' (忍冬草)이자 '한국의 만델라' 에 대한 보상이 노벨평화상일 수 있다.

노벨상 수상으로 DJ는 역사에 남을 한 자리를 이미 확보했다고 본다. 더 이상 사심없이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진력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일만 남았다.

그동안 노벨상과 관련해 세간에 나돌던 온갖 풍설과 억측을 다 털어버리고 빈 마음으로 국민의 아픔과 속마음을 헤아리는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면서 동시에 한국을 이끄는 최고 지도자로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급한 것은 외치(外治)보다는 내치(內治)다.

탈냉전의 남북 평화체제의 초석을 쌓은 이상 대북정책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위기상황의 경제를 챙기는 일에 주력하기를 당부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의 포용력으로 여야 정치를 감싸고 흩어진 민심을 한 곳으로 모아 경제난국을 지혜롭게 넘기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오욕과 불신의 대상이었다.

이제 우리는 성공한 대통령을, 국제적으로 이름을 빛낸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동시에 기억하고 소유하는 새로운 정치의 장(章)을 맞아야 한다.

남은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한 진정한 정치가 김대중으로 기억되기 바라며 그의 노벨상 수상이 한국의 노벨상 행진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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