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미 대선후보 통상정책 철저분석 대비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미국 워싱턴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만나보면 "미국 정부의 의사결정이 고국의 수도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보다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는 말을 공공연히 들을 수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의 바람이 날로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치러지고 있는 이번 선거결과는 전세계인의 삶에 어느 때보다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주.공화당의 통상정책이 각국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당연히 우리도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선거결과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사전에 분석하고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양당의 정책은 자유무역체제 확대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전체적인 방향은 비슷한 것 같으나, 특정분야별로 살펴보면 많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자유무역체제 확립에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해 두 후보는 다 같이 계속적인 지지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고어는 무역정책과 환경 및 노동문제의 연계를 중요시하고 있고 부시는 다국적 기업 등 대기업들의 입장을 고려해 이 문제에 적극적인 지지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다.

각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WTO역할과 주권의 조화문제에 대해서는 고어보다 부시가 훨씬 강한 주권 옹호자세를 취하고 있다.

둘째, 우리의 수출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반덤핑 및 상계관세 제도에 대해선 고어가 자신의 지지기반인 노조를 의식해 보다 엄격한 제도확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 부시는 추가적인 보호조치 없이 현행 제도의 유지를 지지하고 있다.

셋째, 자유무역체제의 확립에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 환경정책과 관련, 고어는 보다 엄격한 규제와 WTO의 새로운 협정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으나 부시는 기업활동에 부담이 되는 추가적인 환경규제에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넷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해서도 두 후보가 기본적으로 지지를 표명하고 있으나 고어는 환경문제, 특히 멕시코의 느슨한 환경규제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부시는 멕시코와 인접한 텍사스 주지사로서의 입장을 반영, NAFTA의 확대에 더 많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다섯째, 중국의 WTO가입과 최혜국대우 부여문제에 있어서도 고어는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보고 있는 반면 부시는 경쟁자로 보고 고어에 비해 강한 반공자세를 보이고 있어 중국측에 보다 적극적인 개방과 인권보호를 위한 압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전자상거래 확대문제에 있어 고어가 장벽 없는 자유거래에 역점을 두고 있는 반면 부시는 예상되는 각종 부작용 해소에 더 많은 관심을 표시하고 있으며 특히 지적재산권 보호에 매우 적극적이다.

끝으로 한.미간의 직접적인 통상문제에 있어 부시는 현재의 통상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려는 입장이나 고어는 노조 등으로부터 철강.자동차.반도체 등에 대한 수입규제 압력을 받고 있어 추가적 수입규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 즉 각국 시장의 통합화와 자유화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지만 미국의 강한 주도력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상과 같은 민주.공화 양당 후보의 통상정책의 내용을 잘 파악해 선거결과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춰야 할 것이다.

이상직 <전 한국무역협회 워싱턴 사무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