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엇이 사법부 독립을 위태롭게 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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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용훈 대법원장이 어제 “사법부의 독립을 굳건히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한마디였지만, 파장이 크다. 당장 정치권력과 사법권력이 정면 충돌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여당은 이번 주부터 사법제도 개선을 위한 특위구성에 나서는 등 신발끈을 매는 형국이다. 사법부가 스스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급선무가 된 시점에, 국가의 양대 축이 대결로 치닫는 듯한 모습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거듭 강조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배치되는 잇단 판결이다. 나아가 판결에서 엿보이는 정치성과 이념적 편향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법치이고, 이는 공정성과 공평성이 생명이다. 따라서 양형의 불균형을 어떻게 개선할 것이냐, 또 판결에 정치성이나 편향성이 개입되지 않도록 어떻게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 것이냐가 해법의 첫 수순이다. 단독 판사의 ‘독단적인’ 판결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불식시킬 것이며, 법원 내 ‘사조직’은 어떻게 할 것이냐도 과제다.

어제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 판결만 봐도 그렇다. 온 국민을 두 달여 동안 ‘광우병 공포’로 몰아 넣은 보도가 ‘과장은 됐지만 허위는 아니다’라고 한다. 국민은 어리둥절함을 넘어 당황스럽다. 당시 국민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당장이라도 광우병에 걸려 죽을 것처럼 두려워하지 않았나. 두 달여에 걸친 촛불시위로 사회경제적 피해가 엄청났다. 언론의 자유 못지않게 책임도 막중한 것이다. 일련의 보도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시청자 사과’를 명령했고, 더욱이 지난해 서울고법은 MBC에 대해 ‘허위보도를 정정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를 뒤집는 판결이 나오니 국민들은 어지러운 것이다.

시국선언을 주도한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무죄 판결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6년 전 이번 사안과 비슷한 전교조 시국선언에 대해 ‘명백한 정치활동’이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표현의 자유’에 무게를 실었다. 이에 학부모들은 걱정이 앞선다. 교사들의 정치성을 띤 집단행동에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한 아이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판결에 국민이 우려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래서 사법부에 국민적 불신을 씻을 수 있는 제도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것이다. 비판 역시 사법부의 권위를 제대로 세우기 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다. 혹여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가 법관들만의 것으로 생각하면 잘못이다. 사법권 독립은 국민의 주권과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상식과 기본권을 침해하는 판결에 대한 비판은 주권자로서 의무이자 권리인 것이다. 이를 외면하는 것은 자칫 사법부의 조직보호 논리나 사법권력의 성역화로 비칠 수 있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듯이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투표를 통해 ‘국민의 뜻’이 반영되는 것처럼 사법부도 ‘공평무사한 판결’을 바라는 국민의 뜻을 제도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사법부의 권위는 판결로 세워진다. 사법부의 독립은 법관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며, 법관뿐만 아니라 국민이 지키는 것이다. 사법부의 독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불신이다. 따라서 사법부 독립의 굳건한 토대는 바로 국민적 신뢰 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