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단군과 개천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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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국 '위서' (魏書)에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개국하였으니 그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

그 때는 중국 요나라 때였다 고 씌어 있다. " 남아 있는 우리 역사서 중 단군에 대한 기록은 1280년께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 에 가장 먼저 실려 있다.

이 책은 단군이 조선을 건국했다는 사실은 "비단 중국 사서뿐 아니라 우리의 옛기록(古記)에 더 자세히 기록돼 있다" 고 쓰고 있다.

이보다 몇년 뒤인 1287년에 나온 이승휴의 '제왕운기' 에도 건국시조로서 단군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두 책이 나온 때는 고려가 몽고의 침략으로 위기를 맞고 있을 때다.마땅히 단일민족으로서의 민족의 정체성과 통합이 절실해져 단군의 재인식이 필요했을 것으로 사학자들을 보고 있다.

나라의 운이 기울던 구한말 대종교 등 민족종교들이 단군을 내세웠으며 1919년 상해임시정부는 개천절 날 경축행사를 벌였다.이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48년부터 개천절은 국경일로 정해졌다.

한편 북한에서는 93년 평양 강동군에서 단군릉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에는 "주위가 4백척이나 되는 대총이 있는데 단군릉이라 전해온다" 는 기록도 있다.북한은 발굴한 능을 복원하고 94년부터 단군제를 성대히 치르고 있다.

평양 근교에 있는 단군릉 발굴 발표 때 우리의 입장은 냉소적이었다.유골 연대측정 방법이나 청동기.신석기 연대에도 맞지 않으니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 고조선.고구려로 이어지는 정권의 정통성 선전을 위한 조작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비단 단군릉 발표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단군과 '그들이 통치한 '고조선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고조선의 건국'에 대한 해석'과 통치자 단군과 그 강토에 대한 해석이 주류.비주류, 강단.재야 사학자에 따라 제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개천절 유래에 대해 수긍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연구나 설명 없이 우리는 오늘 또 단기 4333년의 개천절을 맞는다.

전세계의 시선을 모았던 시드니 올림픽에서 우리는 개.폐회식 남북한 동시입장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홍익인간을 내세운 단군이 세운 나라의 단일민족임을 세계에 보여주면서도 우린 아직 국조(國祖)가 누구라는 것을 제대로 못밝힐 정도로 이해관계에 의해 흩어져 있다.

단군시대를 향한 빗장도 못풀면서 그 이전 우리 조상들이 누볐을 '철의 실크로드' 그 광대한 북방대륙을 꿈꾸고 있다.

이경철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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