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사이클] 독일 율리히 '2인자' 설움 날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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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인간 한계' 를 넘어서려는 투혼에 신이 질투한 것인가.

랜스 암스트롱(미국)의 인간 승리 드라마가 불발로 그쳤다.

대신 영광의 자리는 암스트롱에게 늘 가려있던 2인자 얀 울리히(독일.사진)에게 돌아갔다.

울리히는 27일 시드니 외곽을 도는 남자 사이클 도로경주에서 2백39.4㎞의 거리를 5시간29분8초로 주파, 알렉산더 비노코로브(카자흐스탄)를 9초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새벽까지 줄기차게 내리던 빗줄기는 아침 무렵 그치더니 막상 경기를 시작하자 1백56명의 선수들에겐 햇살이 내리비췄다.

레이스는 구간마다 1위가 바뀔 만큼 치열했고 50여명이 한무더기를 이뤄 선두권을 형성했다.

암스트롱은 경기 직전 "동료들의 레이스를 돕는 데 주력하겠다" 고 말해 레이스 전략이 수정됐음을 시사했다.

울리히는 12번째 구간에서 선두권을 앞서나오며 스퍼트, 승부수를 던졌다.

곧바로 비노코로브와 동료 안드레아스 클로에덴(독일)도 울리히를 바짝 따라붙었다.

숨막히는 3파전. 누가 1위로 골인할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레이스가 이어졌다.

그러나 울리히의 저력이 보인 곳은 언덕길. 골인 지점 4㎞를 앞둔 브론테힐에서 울리히는 혼신의 힘을 다해 급피치를 올렸다.

다른 두 선수가 조금씩 뒤처지면서 승부는 갈렸다.

결승 테이프를 통과하면서 울리히는 두 손을 번쩍 들고 기뻐했다.

1997년 투르 드 프랑스를 제패할 때까지 울리히는 도로 사이클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고환암을 극복한 암스트롱의 등장과 함께 그는 '만년 2인자' 로 전락했다.

올해 투르 드 프랑스에서도 암스트롱에 이어 2위에 만족해야 했다.

울리히는 올림픽을 앞두고 5㎏ 이상의 체중을 줄이며 맹훈련, 설욕을 별러 왔다.

울리히는 "승부는 이제부터다. 한번 오른 왕좌를 쉽게 놓아주지는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울리히에게 1분29초 뒤져 13위로 골인한 암스트롱은 "나의 주종목은 30일 펼쳐질 개인 독주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 라며 또 다른 명승부를 예고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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