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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다시 묻는다] 5·끝 대안은 무엇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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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본지가 이번에 실시한 설문조사는 경제상황에 대한 전문가들의 '열린 답변' 을 듣기 위해 경제 현실인식.문제점.대책 등의 일부 질문을 주관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답변할 수 있도록 미리 설문지를 배포한 후 2~3일의 시간여유를 두고 답변서를 받았습니다.

필요한 경우 전화 인터뷰를 통해 전문가 답변을 구체화하는 과정도 거쳤습니다.

“묘책이 있을 수 없다.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신속하고 충분하게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김정태 주택은행장)

“부실기업이나 금융기관은 시장에서 조기에 퇴출시키는 방식으로 기업구조조정을 마무리 해야 한다”(이준의 대한투자신탁 부사장)

전문가들이 제시한 위기극복을 위한 첫번째 처방전은 단연 금융·기업구조조정의 신속한 마무리였다.기업부실→금융부실→금융시장 불안→기업자금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살길을 찾아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정치권이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하며,공공부문 개혁고삐도 늦출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본지가 50명의 경제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전원은 현재의 우리 경제가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이같은 대안을 제시했다.

◇이것이 5대과제=전문가들은 현정부가 시급해 해결해야할 과제 5가지를 우선순위를 정해 제시해달라는 질문에 금융시장불안 해결(40명)과 기업 구조조정 추진(28명)을 우선 꼽았다.

이 두가지 문제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만병의 근원이 된 만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외충격에 취약한 경제구조(21명),정부 경제정책팀에 대한 신뢰부족(14명)공공부문 개혁(9명)등이 다음 과제로 꼽혔다.

고유가와 반도체 가격폭락은 우리가 어찌할수 없는 외생적인 것이지만 한국경제의 취약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경제팀의 신뢰부족은 성급한 위기극복 선언에서 초래된 것으로 응답자들은 분석했다.지난해 11월 대통령의 위기극복 선언이후 정부는 성과만을 강조하다 경제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올 연말까지 마무리 한다던 기업·금융구조조정이 내년 2월로 미뤄진게 대표적인 예다.포드의 대우차 매각 포기로 그나마 내년 2월 마무리는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분석도 있다.

공공부문 개혁은 정부가 개혁의지를 가장 잘보여 줄수 있는 부분이었으나 가시적인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주식시장 침체도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정부가 대처할 수단이 별로 없는데다 나머지 과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풀릴수 있다고 보고 있다.또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감소나 물가불안 문제를 걱정하는 응답자도 있었다.

전문가들이 지적한 과제의 대부분은 정부나 사회각층에서 인식하고 있는 문제들이다.최근 부각된 제2위기설의 근원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얘기다.

◇다섯가지 대안=전문가들은 공적자금을 신속히,충분히 투입하고(31명),시장원리에 따라 부실 기업과 금융기관을 퇴출시키라(25명)는 것을 시급한 대안으로 꼽았다.

정부가 국민이 납득할 수있는 구조조정 청사진을 제시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하며(15명),공공부문의 개혁 고삐를 죄어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8명)는 지적이 뒤를 이었다.정치권이 하루속히 국회를 정상화해 민생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해야한다는 주문(7명)도 나왔다.

우선 공적자금은 충분히 일거에 투입하되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공적자금 조성은 피할수 없는 길이다.당당하게 국회동의 얻어야 한다.대신 투입은행의 구조조정 등을 철저히 사후 관리해야 한다.”(김병주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이 부분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어느 정도 정리됐다.진념(陳稔)재정경제부 장관은 22일 추가공적자금 소요치를 추계해 공개할 예정이다.재경부는 당초에는 공적자금 규모를 ‘적정수준’이라고 표현해왔지만 최근 ‘충분하게’로 입장을 바꾼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국회동의 과정이 남아있지만,시장안정에 얼마나 기여할지 주목된다.

부실 기업과 금융기관은 시장원리에 따라 과감하게 퇴출시켜야 한다는 요구도 많았다.응답자중 한사람은 “대우 문제는 뒤늦게 정리에 착수하면서 문제가 커졌고,현대도 계열분리후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하는데 현재는 덮어둔 상태다.조속히 정리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매출액으로 이자도 감당 못하는 기업 등 가망없는 기업들을 우선적으로 퇴출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의 크기가 이자를 능가하는 비율)이 3 이상은 돼야 한다.기업활동으로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 1미만인 상태가 3년이상 지속되는 기업은 가차없이 퇴출시켜야 한다.”(정운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현재 이같은 조건에 해당되는 기업은 전체 기업의 20∼30%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구체적인 구조조정 청사진 제시와 국회정상화도 시급한 과제다.국회정상화로 공적자금 동의와 금융지주회사법,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법등을 통과시켜야 구조조정이 가속화 된다는 것이다.

“새경제팀은 ‘내년 2월말까지’식의 두리뭉실한 것이 아닌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빨리 발표해야 한다.국회는 대통령이 결자해지 한다는 자세로 야당을 국회로 끌어들이든지 아니면 단독국회를 열어서라도 조치를 취해야 한다.”(김준일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공공부문 개혁(8명)은 정부의 개혁의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는 만큼 정부신뢰 회복과 직결되는 문제다.최근 감사원의 공기업 감사결과는 공공부문 개혁이라는 말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응답자들은 공공부문 개혁이 더딘 이유로 개혁의 주체가 공무원이고,노조를 포함한 공공기관 자체가 이익집단화 한점을 꼽는다.공공부문 개혁은 공무원 아닌 민간전문가 그룹이 추진하면 효과가 클 것이란 지적도 있다.(현진권 조세연구원 연구위원)

이밖에 대우차를 비롯한 부실기업은 싼 값에라도 조기에 매각하고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정보통신·지식기반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기존의 자본집약적 산업의 이익률은 이미 낮아지거나 서서히 낮아져서 향후 5년 내지 10년 정도가 지나면 더 이상 이익을 올리기 힘들어 진다.코스닥 시장을 통한 벤처기업 육성으로 지식 집약적 산업이 상당 부분 자본집약적 산업을 대체할수 있게 해야 한다.”(변대규 휴맥스 사장)

"또 민관이 함께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시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시키자는 주장도 제기됐다."(김일섭 회계연구원장)

◇잘한 정책,잘못한 정책=정부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저금리 정책으로 성장률을 높이면서 금융·기업구조정을 위한 각종 정책을 펼쳐왔다.저금리 정책에 대해서는 일단 “잘했다”는 평가(45명,90%)가 나왔다.금유계 응답자를 중심으로 “잘못했다”(3명,7%)는 평가도 있었다.

구조조정정책과 관련해서는 당시 상황으로는 어쩔수 없었지만 사후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입장이다.특히 부실기업 워크아웃(38명,76%)과 ‘빅딜’(40명,80%)은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꼽았다.부실은행 공적자금 투입은 잘했다는 평가가 응답자의 23명,46%에 그쳤다.

반면 응답자의 절반(25명,50%)은 잘못된 정책으로 평가했는데, “공적자금 투입은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사후관리를 잘못한데 무게를 두어 이같은 선택을 했다”고 설명했다.

응답자들은 이밖에 주관식 문항에 대한 답으로 남북교류 활성화(11명)나 물가안정 및 외환보유고 확충(5명)은 잘한 정책으로,공공부문개혁(9명)과 의약분업(8명)등은 졸속으로 평가했다.

송상훈·서경호 기자

<설문에 응답해주신 분> (50명, 가나다순)

◇학계.연구소.시민단체

▶김병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김도훈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실장▶김일섭 한국회계연구원장▶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박원암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심상달 한국개발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오문석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센터장▶오성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이승명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상무▶정운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조윤제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지동현 한국금융연구원 박사▶하승수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현진권 조세연구원 연구위원

<재계>

▶강유식 LG 구조조정본부장▶김재수 현대 구조조정본부장▶김재철 한국무역협회장▶박상희 중소기업중앙회장▶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손병두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유승열 SK 구조조정본부장▶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제프리 존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금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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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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