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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의 세상월령가 10월] 나의 가을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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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이종구 작 ‘풍경’, 57x45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4.

국토의 가을은 찬란하다. 지난 여름의 모진 고온다습이 만들어낸 것인가. 벌써 산마루 잎새는 아기의 피처럼 새롭고 붉다. 땅 위의 온갖 과일들이 달다. 뭇 열매 저마다 알알이 익어 미련 없이 떨어지고 있다.

이런 가을이 인간에게는 수확의 계절이고 자연에게는 파종의 계절이다.

고개 들면 하늘의 가슴 한없이 넓다. 산토끼도 귀를 쫑긋 세우고 사람의 마음 한 구석에도 숭숭 바람이 드나들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심금(心琴)의 절기이므로 오래 못 본 벗을 생각한다. 벗에게 몇 마디 멋쩍은 안부편지를 쓰고 싶다. 숨차게 살아오는 동안 편지 써본지도 한참 되었다. 누구의 방대한 서간전집을 뒤적일 때 내 행색이 얼마나 초라할 것인가.

옛 사람과 오늘의 사람이 다른 것은 우정의 도타운 바에서도 차이가 나는지 모른다.

가령 고려 이규보에게는 오래 사귄 연상의 벗이 많다. 그가 늙었을 때는 그 벗들 대부분이 죽은 뒤였다. 그가 남긴 편지 몇 통을 새삼 간절하게 읽어보았다.

30여세나 많은 아버지 같은 벗, 10여년 연상이라 아저씨 같은 벗이 수두룩하다.

조숙이 탈이었다. 열한 살에 술 노래를 지었고 열다섯 살에는 벌써 싹수없는 말술을 먹었다.

그가 아직 살아있는 벗에게 술을 마시러 오라고 보낸 편지 하나는 삶의 무상을 먼저 말하며 술 익었으니 어서 와 함께 마시자 독촉하고 머리를 조아린다고 끝맺는다.

각박하고 성마르고 조급하기만 한 지금과는 무던히 다른 해묵은 도량이 거기 있다.

또한 그는 북망에 묻힌 벗을 찾아가 그 무덤 앞에 술을 부어놓고 제문을 손 떨며 읽기도 한다. '아 슬프도다…여기 진수성찬의 안주는 없으되 오직 향내 나는 술 있으니 드소서…'라고 아뢰고 지난날 술 취해서 미치광이가 되었던 일도 사과하고 있다. 실로 저승까지 오고 가는 다할 줄 모르는 우정이다.

편지가 산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라면 무덤 앞의 제문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를 잇는 대화일 것이다.

그때나 오늘이 다 같이 그 땅 위의 일이 아닌가.

가을 대기는 극사실적으로 투명하다. 이 세상만이 아니라 다른 세상까지도 다 보이는 듯 그 대기의 공간은 확대되고 있다. 그래서 아직 살아있는 이규보가 저세상의 벗을 허물없이 찾아갔는지 모른다.

국토의 가을은 지상의 잔치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널어놓은 태양초 고추멍석과 황금들판 그리고 남으로 남으로 번져 내려가는 단풍의 절경도 끝내는 하늘의 푸름에 귀결된다.

한국의 가을 하늘은 절대다. 그것은 유구한 세월 내내 한국의 절대적인 명예였다.

돌아다닌 기억으로는 그리스 에게해의 하늘이나 사할린의 하늘과 캐나다 앨버타의 하늘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풍경의 핵심에는 반드시 삶의 정감이 스며들어야 한다. 한국의 하늘에는 우리네 조상 대대의 핏줄이 어우러져 살아온 한(恨)과 신명이 녹아 있다. 그래서 한국의 푸른 하늘은 한국의 혼의 장소다.

지난 6.25 사변 뒤 한국에는 무엇 하나 제대로 온전한 것이 없었다. 그때의 한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3년 이상에 걸친 한국 국민의 비통한 수난은 인간의 인내 한계의 극한에 달한 것이었고 그 한도를 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숱한 희생과 상실이 있었다. 산야의 어느 곳도 무사하지 않았고 도시는 거의 다 잿더미로 돌아갔다.

모든 것이 끝났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그 폐허의 현재였다.

그런 시대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그런 곳에도 가을 하늘은 어김없이 살아남은 자들의 머리 위에서 시리도록 높고 푸르렀다. 아 제트기가 날지 않는 날은 얼마나 평화로운 하늘이던가.

나는 1950년대의 그 하늘 아래서 청춘을 시작했다. 거지같이 외지고 떠돌이로 지친 날들이었다. 궁핍의 시대였다. 최근 어느 방송 기획은 그때의 명동시대를 그려냈다.

거기에 임시수도 부산에서 돌아온 이봉구도 나오고 박인환.김수영도 나오고 담배연기 속의 공초도 나온다. 나는 그들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시 공관과 성당 말고는 어느 건물도 성한 것이 없게 폭격당한 명동은 여름 풀섶이 되어 한낮에도 벌레소리가 났다. 산 자들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고 노천주점이 생겨났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정신적 외상(外傷)에도 폐허가 자리잡은 사실을 반영했다. 앙뉘와 고독 그리고 부조리 따위의 낱말이 입을 열자마자 나왔다.

어떤 과거의 가치나 전통도 의미가 없었다. 아니 고향도 없었다. 이 전후감각이 바로 한국 근대문학의 전통단절론으로 표면화된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진정한 과거란 유산이 아니라 폐허라고 말해도 누구 하나 맞설 수 없었다.

약 1000번의 침략을 받은 수고 많은 역사를 들여다보면 고려의 몽고 침략, 조선의 임진왜란.병자호란 그리고 일제의 강점을 지나 6.25사변이 있다.

또한 나라가 패망한 도읍이 철저하게 폐허가 된 것이 고대의 부여고 전란으로 불탄 것이 경주다. 몇 해 전 다녀온 개성 만월대 역시 숫제 염소 몇 마리가 있는 풀밭이었다. 그곳이 시인들로 하여금 '가을 풀'을 읊조리게 했고 황성옛터를 노래하게 한 것이다.

폐허만큼 사람에게 처절한 것이 어디 있는가. 아니 폐허만큼 자신의 근원을 만나게 하는 곳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세계문화의 원형을 찾아 나설 때 으레 거기서 만나는 것이 폐허가 아닌가.

고대 나일강 기슭의 웅장한 폐허나 그리스.로마의 화려한 폐허야말로 현대인들의 가장 강렬한 향수를 자아낸다. 바로 그 폐허가 인간정신의 고향이라는 역설을 낳는다.

어쩌면 문학의 궁극도 폐허 없이는 도달할 수 없으리라.

이런 생각과 함께 국토의 여기저기를 다녔다.

분명한 것은 지금 국토는 철저히 모독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디에도 경건한 구석이 고즈넉이 남아있지 않다. 농토는 몇 가지 작물을 걷어낸 뒤 다시는 돌보지 않을 것처럼 내버려져 있다. 고장난 농기구가 그대로 논바닥에 박혀 있고 비닐조각도 여기저기 널려 있다.

웬만한 산은 뭉개져 거기에 숨막히는 고층아파트가 들어섰다. 땅은 투기의 대상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천년 고도 서라벌도 결국 이름뿐이다.

한동안 나는 다산(茶山)의 신도시 구상이나 섬 개발론을 떠올렸다. 3.1 운동 직후 안창호의 강산개발론도 1920년대 한글학자 최현배의 자상한 주택개조론도 떠올렸다.

그런 선구적인 국토개조사상들은 오늘의 폭력적 개발현실 앞에서는 단단히 주눅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유례없는 역동(力動)의 시대를 이루어 왔다. 하룻밤 자고 나면 신도시들이 세워지고 한국인 각자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는 이미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런 생명력의 작용이 지나쳐 행여 국토의 가해자로 남게 된다면 안 될 것이다.

나는 국토의 가을 하늘을 숨쉬며 옛 친구를 그리워하고 나의 과거와 현재를 있게 하는 폐허의 의미를 새겨본다.

그 폐허에서 나 자신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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