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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출구전략, ‘마법의 순간’을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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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10년 동계 올림픽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메달 가능성이 없는 종목은 좀처럼 보도를 하지 않는 언론의 습성이 이번에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필자의 세대들은 레슬링을 하계 올림픽의 꽃으로 알고 자라났고, 요즘 세대들은 쇼트트랙을 동계 올림픽의 메인 이벤트로 알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진짜 올림픽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육상과 스키에서 우리 선수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이러한 보도 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번 겨울은 한결 나을 듯싶다. ‘소녀시대’보다 깜찍한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트와 영화 ‘국가대표’로 국민의 관심이 고조된 스키점프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스키점프는 기록 경기가 아니다. 앞바람을 안으면 140m를 날 수도 있고, 뒷바람에 눌리면 기준선을 넘기도 힘들다. 그래서 저조한 기록으로 금메달을 딸 수도 있고, 못하던 선수가 잠시 분 앞바람의 행운을 타고 세계 챔피언을 제칠 수도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도 스키점프와 비슷한 모양새다. 이명박 정부는 747을 선언하면서 점프대에 올랐다. 필자는 처음부터 불안했다. 세계기록보다 높은 목표 설정인 데다 이미 경제의 풍향이 바뀌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정부의 성과를 지나치게 폄하하면서 뭔가 보여주기 위해 무리한 동작을 취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5%대를 유지하던 경제성장률은 2008년 2.2%로 추락하였고, 2009년 경제성장률도 0%를 간신히 넘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참담한 기록은 물론 정부의 잘못 때문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세계 불황이라는 악조건 탓이다. 그러나 매우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악조건이 공약을 달성하는 데 실패한 정부의 정치적 부담을 일거에 날려버렸다는 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경제회복을 달성한 국가라는 명예를 안고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최근 치솟고 있는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러한 경제적 성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물론 칭찬할 일이다. 과감한 재정정책이 적기에 실행되었고 적재적소의 인사와 발 빠른 경제외교가 금융과 외환을 안정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모든 공로를 정부가 차지할 일은 아니다. 2009년 경제정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례 없는 불황 속에서 선진국의 부양정책을 따라 하면 되는 것이었다. 정부의 공로는 현명한 정책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한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 경제가 세계 금융위기에도 좌초하지 않고 빠른 회복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꼽으라면 필자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들고 싶다. 대기업이 경제 기적 시대의 양적 팽창을 포기하고 낮은 부채비율, 위험 회피적 투자, 감량 경영을 꾀하지 않았더라면 이번 위기에서 우리는 크나큰 고통을 치렀을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최근 10년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현저하게 저하된 원인을 대기업의 이러한 경영 방식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영향력 있는 논객들이 이를 월스트리트가 국제통화기금(IMF)과 공모하여 각색한 음모의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시각은 최근의 경험을 통하여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질풍노도 시대의 고도 경제성장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 풍랑이 거센 바다에서 안전을 위해 속도를 줄이고 내실을 기하는 항법의 현명함을 음미해 보아야 할 때다.

정부는 이제 두 번째 점프를 준비하고 있다. 풍향이 바뀌어서 유리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번엔 처음에 발휘하지 못한 실력을 맘껏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가 어려워 보인다. 2010년 경제 전망의 화두는 선진국과 신흥국이 차별화된 회복세를 보일 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출구전략은 정부가 주장했던 것처럼 선진국과의 공조하에서 진행할 일이 아니다. 더구나 선진국에서는 언젠가 터져버릴 것만 같은 정부 부채의 폭탄이 자라고 있고, 신흥국에서는 저금리가 높은 성장률과 결합해 버블이 자라기 좋은 습지가 형성되고 있다. 출구전략의 강도와 시점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독자적인 판단을 피할 수 없다.

스키점프에서 마법의 순간은 점프 시점에 있다고 한다. 너무 일찍 뛰면 거리가 나지 않고 너무 늦게 뛰면 몸이 기울어져 착지가 불안해질 수 있다. 정부가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적절한 점프 시점을 포착해 고난도 문제에서 진짜 실력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송의영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