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홍영철 '마음의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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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집으로 가는 길은 많습니다.

사당동 쪽으로 가도 영등포 쪽으로 가도

서초동 쪽으로 가도 집이 나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많기도 합니다.

길이 많아서인지 가끔 길을 잊어버립니다.

마음이 때때로 현기증을 일으킵니다.

마음도 길이 많나 봅니다.

어디로 가야 제 집이 나올지

잘 모르는가 봅니다.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책상 위의 수선화가 아픕니다.

아니, 내가 나에게 미안합니다.

- 홍영철(45) '마음의 집'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길이 너무 많아서 길을 못 찾고 길 위에서 떠도는 것이 사람이 사는 일이다. 홍영철은 집으로 돌아가는 몇 가닥의 길이 아니라 천만 갈래 마음의 길로 머리가 어지럽다. 몸 담는 집이야 눈을 감고도 찾아 갈 수 있을 테지만 마음의 집을 못 찾아 밤을 새운다. "이 뭣고?" 화두 하나 들고 면벽(面壁)하고 있는 선승(禪僧)처럼.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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