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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못 보는 그녀, 미국 로스쿨 벽을 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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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김현아씨가 13일 자신의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김씨는 점자책(오른쪽)을 보면서 점자정보단말기로 필기를 한다. [울산=송봉근 기자]

막 백일을 맞은 아기는 눈앞에서 딸랑이를 흔들어도 다른 곳을 쳐다봤다. 아기의 눈엔 초점이 없었다. 엄마는 불안한 마음에 대학병원을 찾았다. “망막색소변성증입니다. 선천적으로 앞을 보지 못합니다.” 의사의 진단은 청천벽력 같았다. 엄마는 다짐했다. “아가야. 내가 너의 눈이 돼 줄게.”

24년 뒤인 지난해 12월 1일, 울산광역시의 한 아파트. 숙녀로 자란 딸이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나 합격이래. 다 엄마 덕분이야.” 김현아(25·여)씨가 시각장애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에 합격한 순간, 엄마(49)는 딸을 얼싸안았다. 지난해 시각장애인 최초로 사법시험 합격자가 나온 데 이어 또 하나의 장애를 극복한 성공 스토리가 써졌다. 미국 로스쿨 입학 자격시험(LSAT)을 대행하는 한미교육위원단은 14일 “국내 시각장애인이 미국 로스쿨에 합격하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시각장애인으로 미국 로스쿨을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손으로 점자를 읽으면 눈으로 읽는 것보다 세 배 이상 시간이 걸린다. 2008년 2월 현아씨가 유학을 결심했을 때, 가장 큰 후원자인 엄마가 반대했던 건 그래서였다. “앞도 못 보는데 그 어려운 공부를 어찌 하려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미국에 바로 달려갈 수도 없고.”

하지만 딸의 굳은 결심을 확인한 엄마는 그날 밤부터 800장이 넘는 법학 영어 사전을 컴퓨터 스캐너로 스캔하기 시작했다. 한 장씩, 한 장씩 모두 1600장의 파일로 만들었다. 현아씨는 이 파일을 ‘시각장애인용 노트북’으로 불리는 점자정보단말기를 통해 점자로 읽었다. 스캔 과정에서 컴퓨터 인식 오류가 많아 엄마는 다섯 번의 교열을 봐야 했다. 밤엔 공무원인 아빠가 퇴근해 엄마를 대신했다.

엄마는 10년째 이 일을 해왔다. 현아씨가 고등학교 재학하던 시절엔 대입 수능용 문제집을, 대학생 땐 전공서적을 스캔했다. 고3 땐 매일 문제집을 읽어줬다. 안마와 침술 수업이 많은 맹학교에 다니던 딸은 입시공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딸의 눈이 돼 주겠다”던 엄마는 그렇게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엄마 혼자 일반 책을 모두 점자 형태로 바꾸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그럴 땐 서울 강남에 있는 하상장애인복지관의 점자도서관을 이용했다. 점자도서관은 필요한 책을 신청하면 문서파일로 바꿔 인터넷을 통해 제공한다.

공주국립대학에 입학했을 때 현아씨의 첫 번째 난관은 밥 먹는 일이었다. 맹학교에선 식판으로 급식을 줬는데 대학 식당은 뷔페식이었다. 처음엔 음식을 골라 담기도 힘들었다. 다행히 그의 곁엔 ‘장애 학생 도우미’가 있었다.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는 대신 장애 학생의 일상 생활을 돕게 하는 제도였다. 현아씨가 입학한 2005년, 공주대에 이 제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아씨의 대학 생활은 쉽지 않았다. 어느 깐깐한 교수님은 시험시간을 더 달라는 현아씨의 요청에 대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거절했다. 대부분 A학점을 받은 현아씨는 이 과목에서 유일하게 C학점을 받았다. 점자책도 부족했다. 출판사들은 “시각장애인이라 읽을 수 없으니 문서파일을 보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번번이 거절했다. 저작권 때문에 안 된다는 이유를 달았다.

현아씨는 “유학을 준비하면서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로스쿨 입학 자격 시험을 볼 때 단 한 명의 시각장애인 응시자를 위해 미국에서 점자 시험지가 공수됐다. 시험 시간도 일반인의 두 배를 줬다. 도우미와 함께 1인실에서 시험을 치렀다. 영어 점자를 손으로 읽어 객관식으로 된 문제를 풀고 답을 말하면 도우미가 답안지에 표시하는 식이었다.

현아씨는 점자시험지를 한국에 보내는 데 3개월 이상 걸려 토플 시험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은 시각장애인이란 현아씨의 특수성을 고려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환학생 시절 전 과목에서 A학점을 받은 성적표로 토플 시험을 대체해줬다.

현아씨는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 없인 장애인이 자립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 변호사가 돼 다른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동안 현아씨의 눈 역할을 해 온 엄마는 "부모라면 누구나 했을 일”이라며 끝내 이름조차 밝히지 않았다.

정선언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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