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여성 만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천하의 반은 여성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이를 알아챘다. ‘하늘의 반쪽은 여성이 떠받친다(婦女頂半邊天)’란 선언은 그래서 나왔다.

하지만 선언을 검증해 보자. 연초 중국 외교부는 멍구(蒙古)족 여성인 푸잉(傅瑩·57) 전 영국대사를 외교부 부부장(차관)에 임명했다. 개혁·개방 30년 만에 처음이다. ‘반쪽 하늘’이라는 선언이 무색할 정도다. 문화혁명 직전인 1966년까지 여성 최고위 외교관은 부장 조리(차관보)였다. 제4대 외교부장(장관) 차오관화(喬冠華)의 처 궁펑(龔澎)이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로부터 “그를 대체할 외교관이 없다”는 평가를 들었던 여성이다. 최초의 부부장은 문혁 기간 중인 1974년 7월 임명된 왕하이룽(王海容)이다. 그나마 그는 마오쩌둥(毛澤東) 사촌 형인 왕지판(王季範)의 딸이다. 정실 인사였던 셈이다. 마오쩌둥은 특히 문혁 기간 정실 인사를 즐겼다. 처 장칭(江靑)을 당 최고위직 기구인 정치국의 위원으로 임명했다. 일개 사병이었던 조카 마오위안신(毛遠新)은 일약 선양(瀋陽)군구 정치위원 겸 랴오닝(遼寧)성 당위원회 책임자가 됐다.

당직에서도 여성은 초라하다. 지난해 말 쑨춘란(孫春蘭)이 푸젠(福建)성 서기로 임명됐다. 중국 31개 성(省) 가운데 유일한 여성 서기다. 지방 책임자로 여성을 기용한 건 개혁파 총서기 후야오방(胡耀邦)이 최초다. 그는 1985년 완사오펀(萬紹芬)을 장시(江西)성 서기로 발탁했다. 1949년 신(新)중국 성립 이후 최초의 여성 서기다. 그 전까지는 여성 최초의 성장으로 임명된 구슈롄(顧秀蓮) 장쑤(江蘇) 성장이 최고위직이었다(성 서기는 성장보다 상급자로, 성의 최고 권력자다). 두 사람 이후 2005년 쑹슈옌(宋秀岩)이 칭하이(靑海)성 성장이 되기까지 17년 동안 지방 최고위직에 여성은 없었다. 중앙직의 여성도 가뭄의 콩이다. 감찰부 마원(馬馼) 부장, 인구계획생육위원회 리빈(李斌) 주임(장관급) 정도다.

우리도 중국을 비웃을 처지가 아니다. 여성 고위직은 손꼽을 정도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돋보이는 이유다. 세종시에 갇힌 정치권은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중국은 연초부터 ‘소녀굴기(少女崛起-소수민족과 여성들이 일어선다)’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여성이 약진하는 사회가 선진 사회라는 논리다. 우리는 ‘여성 만세’를 외쳐보자. 여성이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나라 힘도 두 배로 늘어날 테니까.

진세근 탐사 2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