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료계 요구 수용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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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의(醫).정(政)대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의 대화 전제조건을 전격적으로 수용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부터다.

지난 7월 29일 전공의들이 파업을 시작한 뒤 양측의 채널은 단절상태나 다름없었다. 정부는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 고 했고, 의료계는 "정부가 8월 초 연세대에서의 전공의(레지던트)집회를 원천 봉쇄한 데 대해 사과하고 구속자 석방.수배 해제조치를 취해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고 맞섰다.

지루한 힘겨루기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동네의원들이 2차 폐업을 했고, 의과대 교수들까지 나서 외래진료를 전면 중단하는 등 국민의 불편이 가중됐다.

◇정부 태도 변화의 배경=정부의 자세가 변화 조짐을 보인 것은 지난주 후반부터다. 8월 31일 의대 교수 대표들과 청와대 수석들의 막후대화가 있었고 여기에서 상당한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

지난 5일 의대 교수들이 외래진료를 전면 중단한 날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는 "의료계가 내건 전제조건도 협상테이블에서 논의할 수 있다" 는 융통성있는 결론을 냈다.

정부가 원칙을 훼손하면서 입장을 바꾼 것은 장기 파업에 따른 국민의 불안과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고 한다.

추석 연휴에 모인 가족들이 의료계 파업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다 보면 결국 정부 내지는 현 정권에 불리한 여론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의약분업이 잘못한 정책의 상위에 꼽히고 있어 의약분업을 조기에 착근시키지 않을 경우 두고두고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전망=정부는 의료계의 전제조건을 수용하는 대신 진료 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강경 자세를 견지하는 것 같지 않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도 "선(先)파업 철회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고 말했다.

따라서 협상테이블이 마련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전망이다. 그러나 협상이 시작된다고 의료계가 당장 진료에 복귀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약사법이 개정돼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파업을 풀지 않을 것" 이라면서 "다만 대화의 진전상황에 따라 현재 2천명선인 참의료진료단의 숫자를 늘릴 수는 있다" 고 말했다. 단계적으로 파업을 풀겠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로서는 약사법을 손 대지 않으면 의사들이 파업을 풀기 어렵고, 손 대자니 약사들이 뛰쳐나올 가능성이 있어 고민이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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