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러시아·일본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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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결렬을 피한 것이 최대 성과였다. 쿠릴열도 4개 섬의 일본 귀속과 평화조약 체결문제가 초점인 일.러 정상회담은 이렇게 요약된다.

'선 영토문제 해결, 후 평화조약 체결' 을 굽히지 않는 일본과 이와 정반대 입장인 러시아가 찾은 유일한 절충점은 교섭 지속뿐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완고한 태도나 촉박한 시일 등에 비춰 올해 안에 평화조약을 체결키로 한 1997년 크라스노야르스크 합의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이틀간에 걸친 교섭에서 일본은 크라스노야르스크 합의에 매달렸다.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는 5일 회견에서 "연말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새 목표를 설정할 상황이 아니다" 고 말했다. 연말까지 평화조약문제를 매듭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크라스노야르스크 합의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회담 석상에서 "올해 내 체결은 공약이 아니다. 최대한 노력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고 못박았다. 평화조약 체결의 새 기한 설정에도 부정적이었다. 영토문제에 관한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 한 평화조약 체결도 기약이 없게 된 것이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영토문제에 관해 긍정적 신호도 보냈다. 시코탄.하보마이 두 섬을 일본에 반환하는 내용이 담긴 56년 일.소 공동선언의 유효성을 인정했다.

이는 소련이 그 효력을 부인해 오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측에서는 소수파이기는 하지만 "회담은 한걸음 전진했다" 는 분석도 있다.

양국이 교섭 계속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평화조약체결문제위원회 등 작업을 한층 가속화하기로 한 점도 성과의 하나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회담을 통해 새 국면을 맞을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고 말한다.

양국은 오는 11월 브루나이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과 모리 총리의 러시아 답방 때 평화조약 문제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나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평화조약 교섭 외의 경제협력 분야에서는 여러 합의가 이뤄졌다. 경협을 통해 영토반환을 이루려는 일본측 의도와 영토문제를 카드로 가능한 한 많은 실리를 챙기려는 푸틴의 교섭술이 동시에 엿보인 대목이다.

극동.시베리아 공동 자원개발이 포함된 모리 - 푸틴 플랜은 남북 화해시대 남북한 모두에도 관심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국제분야에서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문서로 지지한 점은 특기할 만하다.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인식은 지난 7월의 오키나와(沖繩) 주요 8개국(G8)정상회담 때와 같은 수준이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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