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연극과 진실의 차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언론자유를 최고의 자유로 간주하고 있는 미국에서 최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중국 신화사(新華社) 통신이 워싱턴에서 사무실을 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화사 통신은 한달 전 펜타곤(국방부)이 내려다 보이는 크리스털시티의 한 고층빌딩을 사무실로 계약했는데 미 국무부가 반대해 결국 무산됐다.

*** 언론인가 선전기관인가

비록 외국언론이긴 하지만 언론사가 어디에 무슨 사무실을 갖고 있든 미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닌데 왜 이렇게 됐을까. 그 이유는 미국 정부가 신화사 통신을 언론사로 보지 않고 중국의 정부기관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정부 기관이 펜타곤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사무실을 쓸 경우 보안상 문제가 발생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 언론사 사장들이 백두산 천지에서 북한 언론관계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사진이 보도됐다.

또 북한 언론단체와 합의문까지 발표했다.

방북사장들은 북한의 언론인도 자신들과 똑같은 언론인이라고 아마 생각했던 것 같다.

백두산도 같이 가고 합의문까지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무슨 신문이니, 방송이니 하는 이름을 사용한다 하여 다 언론이 아니다.

북한의 언론이 과연 언론인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방북사장들은 먼저 해볼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말하는 언론이라 함은 언론의 자유가 지켜지는 나라에서 독립적이고도 자유롭게 활동하는 언론을 말한다.

이런 기준이라면 북한 언론은 신화사 통신처럼 언론이 아니고 북한의 선전기관이다.

그렇다면 우리 언론사장들은 북한정부의 선전기관을 언론사로 승격시켜주고 돌아온 것이다.

하기야 우리 언론도 정부의 장관 인솔(?)아래 방북을 했으니 할 얘기는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론이라는 단어의 핵심엔 '언론의 자유' 가 내포돼 있다.

이 '자유' 를 인정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내용은 일백팔십도 달라진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우리 방송들은 환영객이 얼마이고 얼마나 열렬하게 환영했는지를 설명하느라 바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뒤이어 평양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의 환영인파가 얼마였으니 金대통령보다 환대를 덜 받았다는 식의 보도도 보았다.

평양의 환영인파가 1백명이면 어떻고 1백만명인들 무슨 차이가 있는가.

지시에 따라 동원되는 인파의 숫자는 환영의 잣대가 아니라 대형(大兄)의 의지의 반영일 뿐이다.

진정한 환영인파는 누구의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나왔을 때를 말한다.

여기서도 문제는 환영객 각 개인이 의사결정 '자유' 가 있느냐 여부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남쪽의 경제기술과 북쪽의 정신을 합작하면 강대국이 된다" 는 발언도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해 보인다.

한국은 경제가 강하고 북한은 굶으면서도 버티고 있으니 정신이 강하다는 것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경제와 정신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남쪽의 경제가 발전한 것은 개인의 창의와 모험심을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 덕분이다.

북한이 이 모양으로 된 것은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은 공산주의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력은 개인의 자유와 맞물린 자본주의 정신 때문인데 정신은 북한이 강하다니... 그게 무슨 정신인가.

전체주의.공산주의 정신인가? 설령 그 정신의 실체를 민족정신이라고 좋게 봐준다 해도 '자유' 가 없는 민족정신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 '자유' 없는 몸짓은 허위

이산가족 상봉은 많은 눈물을 쏟게했다.

그 눈물을 훼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남북을 불문하고 그 만남에서 '자유' 가 없었다면 그 만남은 진실이 아니라 연극에 가까웠다고 보아야 한다.

그들이 자유롭게 만나는 것은 그들의 소중한 인권이다.

그러나 그 인권이 행사진행이라는 명목으로 짓밟혔다.

자유를 빼앗긴 이런 식의 만남이라면 두번이면 무슨 소용이고 열번인들 무슨 유익이 있는가.

자유가 제약된 만남이라면 연출가가 만든 연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남북간에 이미 봇물은 터졌다.

진실과 연극이 뒤범벅 돼 밀려오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를 구별하지 못하거나 의식적으로 구별을 피하려 하고 있다.

구별은 간단하다.

'자유' 가 없는 몸짓은 연극이며 허위이다.

이것이 판단의 잣대다.

문창극 <미주총국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