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봉터미널 폐쇄 '엉거주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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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80년대말 춘천.속초 등 강원지역에서 군대 생활을 한 남자들에게 상봉버스터미널은 아련한 추억의 대상이다.

지방 출신 군인들은 휴가를 나왔다 이곳 주변 여관에서 하룻밤을 잔후 버스를 타고 귀대했다.

설악산으로 여행을 떠났던 대학생들도 터미널 앞 팔각정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여행의 설렘을 달랬다.

추억속의 상봉터미널이 개장 15년만에 없어질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98년 서울시는 상봉버스터미널의 이용객 감소로 더 이상 정상 운영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 폐쇄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상봉터미널 주변 상인들의 반발과 일부 이용 승객들의 편의 제공 등을 이유로 다른 장소로 옮길때까지 폐쇄를 미룬 상태다.

◇ 썰렁한 대합실〓지난달 28일 오후 3시 상봉터미널 대합실. 승객 10명이 버스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을 뿐 매표 창구에는 승객이 한명도 없었다.

이날 춘천으로 가려던 김효식(金孝植.34.상업.서울 중랑구 상봉2동)씨는 "집이 가까워 이 곳을 이용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교통이 편리한 동서울터미널로 간다" 고 말했다.

대합실 상가내 상인들도 손님이 없어 죽을 맛이다. 10년 가까이 이 곳에서 가게를 운영해온 鄭모(45.여)씨는 "장사가 너무 안돼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한다" 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85년 개장당시만 해도 30여개에 달했던 상점들도 현재는 14개로 줄었으며 볼링장은 96년 9월, 예식장은 97년 12월 문을 닫았다.

◇ 승객 격감〓개장당시만 해도 철원.춘천.속초 등 65개 노선에 5백33대가 하루 1천50회를 운행, 승객수가 하루 2만5천5백명에 육박했다.

하지만 지난 90년 건설교통부와 서울시가 상봉터미널의 강릉.속초.춘천 방면 일부노선을 89년 9월에 개장한 동서울터미널로 넘겨주면서 이용객이 연평균 17%씩 급감, 올해는 3천5백명 정도에 불과할 전망이다.

노선도 해마다 조금씩 줄어 지금은 45개 노선만 운영된다.

특히 상봉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은 직선거리로 불과 6.7㎞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상봉의 경우 지하철이 연계되지 않는 반면 동서울은 2호선 강변역이 지나는 등 교통이 편리해 승객들이 상봉터미널을 더욱 기피하고 있다.

또 장거리보다 근거리 노선이 많아 자가용 이용 차량이 늘면서 이용객이 더욱 줄었다.

운영업체인 ㈜신아주는 경영난 해소를 위해 직원수를 당초 1백5명에서 현재 20여명으로 줄이는 등 자구책을 펴면서 서울시에 95년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노선확충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신아주가 97년부터 10차례에 걸쳐 신청한 사업폐지 허가 신청서를 뚜렷한 대책없이 반려했다.

◇ 지지부진한 이전 대책〓시는 ㈜신아주가 해마다 5억원 상당의 적자를 감수하면서 어렵게 상봉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공익사업인 터미널 사업을 업체가 경영난을 겪는다해서 당장 문을 닫을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또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동서울터미널의 춘천.속초 방면의 노선을 다시 상봉터미널로 옮길 수도 없다고 밝혔다.

시는 상봉터미널 이전지로 중랑구 신내동 등을 검토했지만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결론을 얻지 못했다.

시는 올해말 서울.인천.경기도의 광역도시계획이 마무리 되면 구체적인 이전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 상인들 반발〓상인들은 상봉터미널의 주요 노선을 동서울터미널로 옮긴 결과 하루 2만명이 넘던 승객이 3천여명으로 줄면서 주변 경기도 크게 위축됐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12년 정도 터미널 부근에서 가게를 운영해온 金모(50.여)씨는 "처음엔 하루에 적어도 50여명의 손님이 찾았는데 지금은 10명도 안된다" 며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들은 동서울~춘천.강릉.속초 노선을 상봉터미널로 환원해 줄 것 등을 건교부.서울시의회 등에 진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하나둘씩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있다.

고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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