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상처속의 사람들] 下. '뒷전'인 납북자·국군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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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비전향 장기수 북송을 앞두고 가장 할말이 많은 사람들은 납북자.국군포로 가족이다.

이들의 불만은 "대승적 차원에서 장기수에 대한 인도주의도 좋다. 그러나 장기수 북송과 납북자.국군포로 생환은 서로 동등한 비중에서 상호주의 원칙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 라는 것.

우리 사회의 인식이 그간 납북과 월북을 은연 중에 동일시해 가족들은 상봉을 바라기는커녕 '죄인' 으로 보는 시선과 생활고에 시달려왔다.

남북 정상회담에 잔뜩 기대를 걸었지만 "생사 확인이라도 먼저 해달라" 는 요구 마저 받아들여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 납북자 가족="영영 못 만날 것 같던 6.25 이산가족도 만나는 세상인데 왜 우리 아들 소식은 못 듣는 겁니까. 생사라도 알아야 제사나 지낼 것 아닙니까. "

1974년 2월 백령도 인근에서 납북된 선원 鄭유석(당시 30세)씨 어머니 趙사라(84)씨의 한맺힌 절규다. 4대독자를 하루 아침에 잃은 趙씨는 "정부가 장기수 송환에는 적극적이면서 정작 북에 억류된 자국민은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고 질타했다.

휴전 이후 현재까지 북한에 억류돼 있는 납북자는 모두 4백54명. 국가정보원은 지난 1월 납북자가 3천7백56명에 달하며 이중 3천3백2명이 귀환했다고 밝혔다.

납북자 중 약 90%가 선원이며 해외 연수.관광 도중 납치된 경우도 있다. 또 해군 함정 승무원.대한항공 여객기 승무원 30여명이 여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생사가 확인된 것은 지난해 초 국가정보원이 북 정치범수용소에 생존해 있는 27명의 명단을 공개한 것이 유일하다.

납북자가족모임 崔우영(30.여)대표는 "정부와 시민단체는 수십년간 납북된 피붙이의 생사도 모른 채 가난과 절망에 시달려온 가족들의 인권에도 눈을 돌려야 할 것" 이라고 촉구했다.

◇ 국군포로 가족=정부가 추산하는 생존 국군포로는 1만9천여명. 국군포로송환협의회는 지난해 기근.추위 등으로 인한 사망을 감안, 1만6천여명 가량으로 보고 있다. 이름이 확인된 국군포로는 3백43명에 불과하다.

가족들은 행여 북에 있는 가족에게 해를 끼칠까봐 이름을 밝히는 것도 꺼리며 살았다.

소식을 듣는다 해도 만날 길은 막막하다. 崔은애(가명.여.32)씨는 3년 전 북의 큰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았다.

"47년의 세월이 한스럽다. 도저히 소생할 길이 없으니 살길을 찾아달라" 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국군포로송환협의회 총무를 지냈던 金영보(53)씨는 "우선 생사확인을 하고 북한에 지원되는 식량이 포로에게도 갈 수 있었으면 한다" 고 말했다.

기선민.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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