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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는 공공 재산으로 보호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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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환경부는 유엔개발계획.지구환경기금(UNDP.GEF) 사업의 일환으로 국제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습지 관리 사업에 착수함으로써 한국의 습지가 국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습지 보전을 위한 제도적인 보강과 비정부기구(NGO)의 참여, 그리고 시범사업의 전개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습지에 관한 람사 협약'에서 권고하고 있는 국가습지위원회도 설립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국제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 습지가 처해 있는 상황을 진단하고,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이 사업은 우리나라에서 실시되는 최초의 UNDP.GEF 사업이다. 1994년 공식적으로 시작한 GEF는 지속가능한 경제협력과 지구환경 보호 간의 연관성, 그리고 환경안보와 안정된 사회질서 간의 연관성을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번 습지사업은 새만금 간척지에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를 건설하고, 수도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내에 26개의 국민임대주택을 개발하는 등 굵직굵직한 개발사업들이 해안 습지와 내륙 습지가 있는 지역에서 추진되는 가운데 시작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주요한 습지는 법률상으로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관리되어 오고 있지만 이들 습지에 가해지고 있는 위협 요소를 평가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는 미흡하다는 국제적 지적이 있어 왔다. 전국 습지의 유형화, 기능과 가치평가가 끝나지 않는 과정에서 습지보호구역이 지정된 점에 비춰 국제적 기준을 적용, 보다 많은 습지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북한과의 접경지역이자 50년 이상 인간의 행위가 전혀 가해지지 않은 비무장지대(DMZ) 내륙 습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통일한국을 대비한 한반도 생태축의 보전 및 관리방안 수립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이는 비단 환경정책만의 문제가 아닌, 가능하다면 국제기구의 참여 아래 남북한 공동조사 및 보전사업 추진을 통해 최초의 남북한 환경협력 사업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진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나라가 가입하고 있는 '습지에 관한 람사협약'에서는 늪.이탄지, 그리고 물이 있는 지역을 습지로 구분하고 있으며, 간조 때 물의 깊이가 6m를 초과하지 않는 해안지역을 습지로 구분하는 기준도 마련돼 있다. 이 같은 습지는 여러 가지 생물을 부양해주는 서식처가 되고, 홍수 방지는 물론 레크리에이션 기회를 제공하며, 수질정화에도 도움을 준다. 특히 생명공학 기술의 개발을 위한 소재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전 세계 습지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절반 이상의 습지를 잃어버린 후인 88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 의해 습지총량정책(No Net Loss Policy)이 채택됐다.

우리 정부는 정확한 수치를 내놓지 않고 있으나 우리나라 습지 역시 그동안 절반 이상이 사라졌을 것으로 여러 가지를 미뤄 추정할 수 있다. 이 같은 습지 상실의 원인으로는 습지를 보전해야 할 필요성을 나타내는 과학적 증거의 부족, 현재 진행되고 있는 습지의 파괴를 둘러싼 갈등, 그리고 습지 보전을 위한 법 규정의 미비 등을 들 수 있다.

한 나라의 문화적 태도는 습지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하도록 하며, 습지를 다스리는 방법까지 바꾸어준다. 예를 들어 철원 두루미 서식처는 농경문화가 만들어낸 2차 습지로서 서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에서는 습지를 공공재로 보고 있다. 습지는 토지와 물로 이뤄지므로 단순하게 개인자산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많은 습지는 개인소유의 경계나 국가 경계를 초월해 광범위한 수문학적 체계와 연결돼 있다. 한 유역 내에서 조그마한 습지의 매립은 유역 전체의 물 흐름이나 서식처의 연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사유재산인 일반 토지와는 크게 다르다.

습지 생태계를 대상으로 한 모처럼의 유엔과의 국제협력 사업이 습지의 공동가치(Common Values)를 보호하고 습지를 공공적인 방법으로 다룸으로써 개인이 향유하는 재산에 관한 권리를 방해하는 행위인 공동 뉴슨스(Common Nuisance)를 정착시키는 성과를 가져오기를 기대해본다. 그리하여 습지 보전과 복원을 위한 국제 파트너십 프로그램의 벤치마킹 사례로 국제적으로 널리 보급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귀곤 서울대 교수,환경생태계획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