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베트남식 가격개혁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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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북한이 경제를 살리려면 가격개혁(Price Reform) 부터 해야 합니다. " 세계은행 아태지역 자문관인 브래들리 밥슨(50)은 28일 "북한이 지금처럼 왜곡된 가격체계로는 경제회복도, 외부 투자유치도 기대하기 어렵다" 며 이렇게 강조했다.

1998년 2월 평양을 방문했던 그는 북한경제의 최대 걸림돌로 '가격체계의 의미 상실' 을 꼽았다. 시장경제에서 가격은 비용과 수익을 합친 것으로 경제활동의 기초가 되지만 모든 것을 정부가 결정하는 북한에서 가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한달에 1백50원(공식 환율상 미화 약 70달러)을 받는 북한 근로자가 실제 장(場)마당에서 물품을 구입해 생계를 꾸려가려면 4천원이 소요될 만큼 북한의 가격체계는 심하게 왜곡된 상태다.

지난 26년간 아시아지역에서 경제자문을 해 온 밥슨은 가격개혁을 통해 경제회생에 성공한 국가로 베트남을 꼽는다.

베트남 정부는 89~90년 쌀 부족 등 경제가 악화되자 가격을 현실화하는 등 가격개혁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베트남은 쌀 수출국이 됐다. 베트남이야말로 외국의 지원 없이 오직 가격개혁만으로 경제회복에 성공한 사례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북한의 세계은행 가입은 시기상조" 라고 그는 말한다. 무엇보다 미국과 일본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데다 북한이 세계은행 가입에 필수적인 경제통계를 국가기밀로 분류,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밥슨 자문관은 "북한이 세계은행에 가입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트러스트 펀드를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 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세계은행이 1천만달러 규모의 트러스트 펀드를 설립할 경우 이는 북한 관리들을 대상으로 시장경제 연수, 경제조사, 경제개발 계획수립 등에 유용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밥슨 자문관은 또 북한이 총1백20억달러에 달하는 외채를 서둘러 처리하지 않으면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경제회생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데다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협정 등 실질적인 조치를 준비하고 있어 북한의 경제가 결코 비관적이지만은 않다고 그는 전망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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