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명의 無로 바라보기] 내 안의 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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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누구나 '나의 태양' 을 찾는다. 그런데 과학자들에 의하면 해는 거대한 수소가스 덩어리로 뭉쳐져 있고, 원자핵끼리 결합해 핵 융합반응으로 불기운이 생긴다고 한다.

50억년 전에 뭉쳐져서 앞으로도 50억년 더 불타게 되리라고 하는데, 나는 그 점에 대해 의심해 왔다.

현재까지 과학이 밝혀낸 이론이 어떻든, 상호 의존관계 속에서만 만물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어온 나는 해가 혼자서 스스로 불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해가 우주 전체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기운을 받아 불로 변환해주는 반사경의 역할만 할 뿐이라고 짐작한다.

호수는 일종의 거울처럼 옆에 있는 나무의 그림자를 담는다. 물론 나무가 걸어 들어와 물 속에 누워서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호수는 나무를 반사할 수 있는 성품 또는 나무의 형상을 자체 내에 갖고 있다.

나무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반사할 수 있는 능력과 그림자를 본래부터 포함하고 있다.나무쪽에서 보아도 마찬가지다. 만약에 나무가 호수에 의해 반사될 수 있는 성품을 갖고 있지 않다면 호수에 담길 수가 없다. 소리나 냄새는 반사되지 않는다. 나무는 본래부터 호수를 자신 속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얽어매는 것은 아래로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남보다 높이 오르기 위한 경쟁심이다.

실패.패배.낙오는 상상하기도 싫다. 어떻게든 성공하고 이기고 최소한 남만큼이라도 잘 되고 싶다. 비싼 옷과 고급 차로 남에게 나를 뽐내고 싶다.

출세를 위해 공부하고 일하고 교제한다. 계속 긴장하면서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의 비위를 맞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미 높은 자리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시시하다. 타이거 우즈와 같은 스포츠 스타, 빌 게이츠처럼 돈을 많이 번 사람이 부럽다.

높은 데만 쳐다보는 것이 습관화돼 이제는 웬만한 성취로는 양이 차지 않는다. 크게 한방을 터뜨려야 할 것 같다.

양이 차도록 성공한 뒤에 신나게 살려고 하면, 나는 영원히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게 될 것이다. 역사라는 무대를 장식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해 나도 가진 힘을 다 보태야 하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상대가 서로를 자기 속에 담고 있는 세상을 음미하면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해와 주변 환경, 호수와 나무가 서로 상대를 자신 속에 포함하고 있듯이 나와 최고로 끗발이 좋은 사람도 서로를 자신 속에 포함하고 있다. 스타들은 나의 무한과거와 미래의 그림자이다.

스타들에게도 어둡고 어려웠던 과거가 있었고 혼자로만 남을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스타들은 여왕개미와 하늘로 올라 교미한 후에는 죽어버리는 수개미와 같은 운명이다.

나는 스타의 그림자를 담고 있는 호수요, 거울이다. 조금도 억울할 것이 없다.

수행자들이 펄럭이는 깃발을 바라보며 각기 자기 주장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한 그룹은 "깃발이 움직인다" 고 말하고 다른 그룹은 "바람이 움직인다" 고 외치고 있었다.

제자들의 논쟁을 바라보던 선사는 "너희들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니라" 고 말했다. 마음이 깃발과 바람 속에 있기도 하고, 깃발과 바람이 마음 속에 있기도 하다는 말이다. 내 마음에 세상이, 만물 하나 하나에 내 마음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석지명 법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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