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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의 증오에 사무친 아이들, 그라운드에서 하나가 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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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김신환 감독은 동티모르의 유소년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며 자신의 내면을 발견했다. 그의 사심없는 노력 덕분에 동티모르는 독립 후 처음으로 국제대회 본선에 진출했다. 신동연 기자

두 번의 식민 지배와 내전, 그리고 독립.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슬픔을 우리는 잘 안다. 그 뒤에 남는 앙금의 더께가 얼마나 두꺼운지도. 동티모르는 8년 전 치열한 내전 끝에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에서는 ‘평화’와 ‘화합’이라는 격문을 길거리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국가 재건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명제들이다. 이 낯선 곳에서 축구로 화합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의 김신환(53) 감독. 내전으로 피폐한 축구 불모지 동티모르에서 소중한 열매를 키워 나가는 그의 스토리는 올여름 영화로 상영된다.

6월 개봉 예정 ‘맨발의 꿈’
열두 살짜리 나모스는 같은 팀의 동갑내기 모타비오와 만나면 싸웠다. 동티모르의 독립을 위해 싸운 나모스의 가족과 친척들은 독립 후 친인도네시아 민병대의 테러로 여러 명이 죽고 다쳤다. 모타비오네 집은 친인도네시아 민병대에 적극 가담한 쪽이었다. 하지만 결국 둘은 축구를 통해 마음을 연다. 그라운드에 서면 어른들의 세상 이야기는 잊혀졌다. 공을 쫓아 골을 목표로 함께 뛰는 축구는 정치가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서 두 소년의 화합을 촉진하는 매개채였다. 일본에서 열린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우승하는 순간, 둘은 얼싸안고 하나가 된다.

6월에 개봉될 예정인 영화 ‘맨발의 꿈’의 주요 내용이다.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이란 사실을 기반으로 픽션을 가미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이름만 다를 뿐 세대를 거쳐 얽힌 갈등은 지금도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의 현실이다. 김신환 감독은 “아이들은 가정사의 불행을 잘 내색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독립파였고 누가 친인도네시아 민병대 쪽이었는지 다 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어머니가 납치돼 아버지 밑에서 크는 아이들의 증오심은 대단하다. 그런 아이들 사이에서 감도는 갈등을 해소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국이 불안해지면 갑작스레 몇 달이고 사라지는 아이들도 있다. 보복 테러를 걱정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지내다 돌아오곤 한다.

김 감독은 동티모르에서 한국전쟁을 겪은 자신의 부모 세대를 떠올리며 결심했다. “내가 전쟁을 겪지는 않았지만 그 세대들의 고통은 잘 안다. 이 아이들도 그런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을 불러 “부모의 잘못일 뿐 너희들은 친구로 지내야 한다”고 수시로 훈계했다. 앙금은 쉽사리 걷히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한 팀에서 발을 맞추다 보니 마음도 맞아가기 시작했다.

동티모르의 히딩크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의 스토리는 ‘맨발의 꿈’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무명 선수였던 김 감독은 실업팀에서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은 적도 있다. 그는 1984년 실업팀 현대자동차에 입단해 7년간 뛰었다. 서른한 살에 은퇴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나왔다. 현대자동차는 지금이나 그때나 보수가 좋은 1등 직장이었다. 만류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남에게 퍼주길 좋아하는 그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업은 그가 갈 길이 아니었다. 손 대는 사업마다 망했다. 96년에는 가족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한국에서는 설 자리가 없었다. 지인의 소개로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구상했다. 하지만 현지 상황에 어둡고 밑천도 없는 그는 환영 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의 발길은 동티모르까지 이어졌다. 투자금이 많이 들지 않는 사업을 찾기 위해서였다.

“세상은 운동만 한 나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인의 소개로 동티모르로 갔다. 거기서 축구와 다시 만났다.”

2002년, 12년 만에 재회한 축구는 그에게 희망이었다. 자포자기 상태였던 그는 아이들을 통해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마음을 치유했다. “아이들이 바른 길을 가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동티모르에서 나를 찾았다. 코흘리개 아이들이 이제 열여섯, 열일곱이 됐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 207개국 중 200위에 올라 있는 동티모르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최하위 팀이다. 그러나 동티모르 10세 이하 청소년(U-16) 대표팀은 지난해 9월 중국에서 열린 AFC U-16 선수권대회 F조 예선에서 2위를 차지해 올해 열리는 본선에 진출했다. 독립 8년 만에 동티모르가 국제대회 본선에 처음 진출한 것이다.

2002년 7~8세의 유소년 클럽 창단멤버들이 8년간 김 감독 밑에서 조련 받은 결실이다. 초창기 정착은 힘들었다. 그는 “오랜 기간 식민지 지배를 받아서 그런지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다. 예전 실업대표로 국제경기에 나갔던 사진을 들이대며 한국의 대표선수라 속이기도 했다. 어쨌든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있었으니까”라며 옛일을 회상했다.

축구를 앞세워 사업권이나 따가지 않을까 의심했던 현지인들은 그의 진심을 인정했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나고 아이들이 축구로 교화되자 사나나 구스마오 총리까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김 감독은 “구스마오 총리와는 미리 연락도 없이 집을 찾아가도 되는 사이로 발전했다”고 뿌듯해 했다.

AFC U-16 대회에 나설 선수들은 전원 그의 유소년 축구팀 소속이다. 이 선수들이 커가면 자연스레 성인대표팀까지 맡게 된다. “지금 우리 팀과 성인 대표팀이 경기를 하면 3~5골 차이로 우리가 이긴다. 이 아이들이 커서 스무 살이 넘으면 아시안컵 본선에 도전하고 싶은 게 꿈”이라고 밝혔다.

‘국가대표’ 만든 김태균 감독이 메가폰
김신환 감독의 이야기는 우연히 김태균 영화감독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라면을 끓여 먹어가면서도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이들을 이끄는 장면이 김태균 감독의 뇌리에 오랫동안 박혀 있었다. 후원금을 쾌척한 김태균 감독은 주위 영화인들에게 동티모르 축구팀 사연을 알려 후원회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축구팀의 영화적 요소도 간과하지 않았다.

‘맨발의 꿈’을 제작하고 있는 캠프비의 김준종 프로듀서는 “픽션을 많이 가미하지 않더라도 스토리 자체가 감동적이다. 폐허가 된 동티모르의 도시는 60년 전 우리나라를 연상시킨다. 여기에 화해하지 못한 앙금 등 훌륭한 영화 소재가 섞여 있다. 투자자를 설득하는 것도 예상보다 쉬웠다. 우리 영화에 투자한 쇼박스는 ‘마라톤’ ‘국가대표’ 등의 영화가 성공한 예가 있어 이번 영화에도 자신을 갖고 있더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한 달 일정으로 현지 촬영에 나선 제작진은 당초 전문배우들을 섭외해놓았다. 현지 방송국을 통해 아역배우들을 불러모았지만 기대 이하였다. 그런데 혹시 하는 마음으로 선수들에게 연기를 시켜본 것이 기대 이상이었다. 김신환 감독은 “대충 상황만 알려주면 아이들이 알아서 척척 해냈다”고 감탄했다. 김준종 PD는 “표정 연기까지 제대로였다”고 설명했다.

“번듯한 축구학교 만들고 싶어”
“국제대회에서 전반전은 잘 뛰는데 후반전에 무너진다.” 김신환 감독의 하소연이다.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한 결과다. 김 감독은 번듯한 축구학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동티모르 정부가 땅을 대주기로 했다. 아이들이 합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축구학교에서 하루 세 끼 제대로 먹여 체력을 키우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금이 모자란다. 그는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아 지금까지 왔다. 가스공사에서 축구학교 설립에 지원을 해주실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준종 PD는 “우리 영화가 흥행이 돼 많은 분들이 큰 돈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후원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장치혁 기자 jang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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