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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혜원 만든 선교사 알렌 vs 이권 중개한 ‘로비스트’ 알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48호 31면

선교사 호러스 알렌

개화기에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고 이타적인 삶을 살았던 선교사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호러스 알렌(1858~1932)은 제중원(구 광혜원) 초대 원장이자 주한미국 공사관 서기관, 임시대리공사와 전권공사를 지내며 당대 한국의 외교를 주도했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이권을 행사했다.

“공사관 일행의 몸에서는 똥냄새, 지린내가 풍겼는데 그들은 선실에서 끊임 없이 줄담배를 태워댔다. 선실 안은 악취로 진동했다. 그들의 옷에 기어다니는 이(虱)를 가리키면서 잡으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참을 수 없을 만큼 고약한 악취를 없애지는 못했다. 이 배의 승객들은 조선사절단을 한 방으로 몰아 격리해준 데 대해 감사했고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박정양 공사는 사절단 가운데 가장 나약하고 바보천치 같은 인물이었다. 공사 수행비서 강진희는 지분거리기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3등서기관 이상재는 더러운 사람이다. 조선 정부가 정식으로 임명한 번역관 이채연은 영어 한마디 할 줄 몰랐다. 1등서기관 이완용과 2등서기관 이하영은 그래도 전반적으로 조선사절단의 나쁜 인상을 상쇄, 보충해주고 있다.”

알렌이 1887년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여객선 오션익호 안의 조선 외교사절단을 묘사한 글이다. 알렌은 일기 곳곳에서 짜증난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혹평한 박정양 공사에게는 꼬박꼬박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중성도 보인다. 이용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알렌은 1884년 9월 제물포를 거쳐 조선에 들어왔다. 미국 장로교 선교부 소속의 의료선교사인 그는 1883년 중국에 파견되었지만 사역은 실패하고 만다. 어렵게 조선으로 진출한 그는 주한 미국 공사관부 의사로 근무하다가 갑신정변을 맞게 된다. 이때 민비의 조카 민영익이 자객의 칼을 맞고 빈사상태에 빠지는데 알렌은 봉합수술과 극진한 치료로 민영익의 목숨을 살려낸다. 민영익은 생명의 은인 알렌에게 현금 10만 냥을 보내고 친형처럼 모신다. 알렌은 민영익보다 두 살 위였다. 알렌은 민영익과의 친분을 이용하여 병원 건설 방안을 왕실에 올리고 민비와 고종의 신임을 얻어서 급기야 제중원을 연다.

의료선교보다 외교업무에 치중했던 알렌은 동료의사 헤론과도 갈등을 빚곤 했다. 그는 왕실의 비호 아래 많은 이권을 따낸다. 경인철도 부설권은 외국인들이 가장 탐내는 이권사업이었다. 알렌은 러시아 공사 위베르를 구워삶고 외부대신 이완용과 농상공부 대신 조병직을 포섭해서 자기 친구 모오스에게 이 부설권을 따준다. 약삭빠른 무역 브로커 모오스는 커미션을 받고 일본에 넘긴다. 모오스는 알렌의 공작으로 이미 운산금광 채굴권을 따낸 상태였다. 그는 그 채굴권마저도 3만 달러를 받고 미국인 헌트에게 넘겨버렸다. 당시 광산노무자 연봉이 30달러가 안 됐으니 엄청난 금액이다. 미국은 평안북도 운산 금광에서 40여 년 동안 순금 80여t을 채굴한다. 당시 시세로 1500만 달러, 현재 시세론 332억 달러(약 3조6000억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빈한한 조선으로선 막대한 국부 유출이었다. 기울어가는 왕조에서 거간꾼 노릇까지 겸해 주머니를 두둑히 챙긴 알렌은 을사늑약 직후 미국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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