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풍경] 향토음식점 '산굼부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음식은 정성이다. 신선한 야채와 고기 등 아무리 좋은 재료로 만들어 낸 음식도 정성이 없으면 맛도 없다.

깨소금을 뿌리고 참기름을 둘러도 코 끝만 살짝 자극할 뿐 입안에 들어가면 이내 세치 혀가 거부감을 나타낸다.

신촌로터리에서 서강대교를 향하는 대로변에 위치한 '산굼부리(02-334-4557)' 식당.

작은 빌딩 2층의 비좁은 공간에 한지 벽지와 항아리 등으로 어설프게 향토음식점 분위기를 낸 곳이지만 질그릇과 뚝배기에 담긴 음식 하나하나는 정성이 가득하다.

식탁에 기본 찬으로 담겨 있는 깍두기와 부추김치만 봐도 여느 식당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아낌없이 사용한 고춧가루와 각종 양념으로 빛깔부터 입맛을 다시게 한다.

넉넉하게 찬그릇에 담았다가 혹시 남기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다.

4천원짜리 국밥과 더불어 나오는 장떡.두릅초무침.오이냉국.야채 겉절이.고추멸치 간장조림 등도 대중음식점의 반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시골 고향집에서 어머니가 손수 차린 밥상을 받는 기분이다.

양지머리 고운 국물에 콩나물과 선지를 넣고 고춧가루로 얼큰하게 끓인 국밥 국물은 그동안 정성이 부족했던 음식으로 더부룩했던 뱃속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쌀밥이 아닌 보리밥의 칼칼한 맛도 반갑기 그지없다. 더운 보리밥 위에 부추김치를 척척 얹어 먹어도 꿀맛이다.

이 집의 독특한 메뉴는 연초란찜(8천원). 특별 주문한 달걀 초란을 풀어 날치알.해삼.목이버섯.팽이버섯.새우.홍고추를 넣은 것으로 새우젓이나 명란젓으로 끓인 젓국 같은 계란찜이다.

담박한 맛에 부드럽게 목젖을 타고 넘어간다. 뚝배기에서 한 숟가락 떠서 후후 불어 입에 넣고 나면 다른 음식으로 수저를 옮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좌석은 40여석. 공간이 좁아 점심.저녁 피크타임에는 서둘러야 한다.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오후 10시30분이며 매주 일요일은 쉰다. 주차할 곳이 없으니 승용차는 피하는 게 좋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