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소통] 공포물 속의 휴대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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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휴대전화는 이제 누구나 들고 다니는 생활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텔레파시 초능력의 소유자들처럼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한 언론학자는 이를 두고 새로운 인간형인 '호모 텔레포니쿠스(전화하는 인간)' 가 등장했다고 표현한다.

'찍히면 죽는다' 와 '해변으로 가다' 의 젊은 주인공들은 호모 텔레포니쿠스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이들이 보여주는 휴대전화에 대한 집착은 경이로운 데가 있다.팔이 잘려 나가고 그 잘린 팔이 도축장 쇠갈고리에 걸려 있을 때까지도 손은 휴대전화를 꽉 움켜쥐고 있다.

기차 안에 갇혀 죽음의 공포에 맞닥뜨릴 때 떨리는 손으로 허겁지겁 가방을 뒤져 찾아내는 것도(칼이나 총이 아니라) 휴대전화다.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유일한 구원의 가능성인 휴대전화가 바닥에 떨어져 괴한의 발에 짓밟히는 순간,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호모 텔레포니쿠스에게 휴대전화는 단지 음성정보를 주고받기 위한 매체인 것만은 아니다.산속에서 가까이 있을 친구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전화의 벨소리를 이용한다.'마지막 여행' 이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 역시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전달된다.

두 공포영화는 또한 우리 사회의 집단 무의식에 내재된 감시체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보여주고 있다.실제로 컴퓨터 네트워크의 확산에 따라 수많은 공적.사적 기관들이 방대한 개인 정보를 수집하여 컴퓨터 사용자들을 '관리' 하고 있으며 데이터베이스에 의한 전자감시체제의 위험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시스템 운영자는 우리를 바라보지만 우리는 그들을 바라 볼 수 없다는 데 근본적인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웹사이트를 통해 친구의 살인 장면이 재현되거나, 고속도로 TV 휴게소 텔레비전에 이미 살해당한 동료의 모습이 나타날 때, 또 전자메일을 통해 끊임없이 협박 메시지를 받을 때 주인공들은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권력은 시선의 방향에 의해 결정된다.감시자는 숨어서 감시하는 한 권력(칼이나 도끼)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다.그러나 범인이 마스크를 벗거나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 예외 없이 자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감시 카메라는 도처에 깔려 있다.해변으로 도망가도 그 감시망을 벗어날 수는 없다. 물론 카메라에 찍힌다고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누가 우리를 찍고 있는지, 누구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향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에게로 향한 시선의 방향을 그들에게 향하도록 돌려놓는 것만이 전자감시체제의 공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김주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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