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더불어] 예원 중 재학생 38년째 사랑실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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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울지 마, 엄마가 다시 올게. "

2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사회복지법인 성로원 아기집.

2년 넘게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서울 예원학교 姜민영(16.중3)양은 칭얼대면서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생후 10개월의 태식이를 마치 엄마인 양 다독거렸다.

지난 4월 서울 오류동의 한 가정집 앞에 몰래 버려진 태식이는 심장병 때문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좀처럼 민영이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예원학교 남녀 학생 5백여명은 버려진 아기 77명이 수용된 이 아기집에서 '엄마.아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기저귀 갈아주기와 빨래는 기본이고 생일상까지 마련해 준다.이 학교 학생들이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기 시작한 것은 38년 전인 1962년. 지금은 거의 전교생이 1년에 평균 두 번씩 다녀갈 만큼 호응이 크다.

졸업 후에 아기들을 찾는 학생도 적지 않다.졸업생 양지영(梁智影.23.미국 맨해튼 음대 3)씨는 "중학교 때 아기들을 돌보면서 부모가 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배움을 얻었다" 며 "이후 미국유학 중에도 방학 때 귀국하면 성로원에 들른다" 고 말했다.

아기집 김종찬(金鐘燦)원장은 "학생들이 어린이들에게 마음의 기둥이 돼 든든하다" 며 "동생으로 입양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오기도 한다" 고 밝혔다.

대전 신탄진중 2학년 5반 남녀 학생 38명도 대전시 가양동 '늘사랑 아기집' 에서 버려진 어린이를 보살피고 있다.

돌보는 아기는 갓 돌을 지난 지영이. 태어나자마자 버려졌고, 호르몬 분비 이상으로 발육이 더디다.

지난 3월 지영이의 처지를 알게 된 학생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돌보기를 자청했다.

매일 7~8명씩 조를 짜 교대로 과자.장남감 등을 챙겨 지영이를 찾는다.

오찬란(15)양은 "지영이의 엄마가 돼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돌보겠다" 고 다짐했다.

담임교사 류근찬(38)씨는 "이같은 인연이 철부지 청소년들을 속깊은 성년으로 성장시켜 주고 있다" 며 대견스러워 했다.

찬란양은 "집안 형편을 비관해 가출한 동료 학생들이 지영이를 보살펴주면서 서서히 모범생으로 바뀌는 일도 있었다" 며 "아마 지영이에 비하면 자신들의 어려움이 작아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고 소개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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