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남북 합작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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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라 진평왕 때 세 화랑이 금강산 길에 올랐다.

밤 길을 걷다보니 갑자기 불길한 혜성이 나타나 가던 길 멈추고 그 사실을 보고했다.

그 때 나라의 큰 시인이자 스님인 융천사(融天師)가 '혜성가' 를 지어 부르자 혜성도 사라지고 노략질하던 왜구도 물러갔다고 '삼국유사' 는 전한다.

고구려 을지문덕도 "신통한 계책은 천문을 헤아리며 묘한 꾀는 지리를 꿰뚫는구나" 라며 적장을 치켜세우는 시로써 오히려 수나라 30만 대군을 물리쳤다.

시(詩)는 언어(言)로 지은 사원(寺)이다.

신들과 우주와 통하는 예언이요, 신탁(神託)이다.신화나 오래된 역사 속에서만 시의 위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사르트르는 "시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에 봉사하는 것" 이라 했다.

심장의 마지막 한방울 피까지 펜촉에 찍어올려 말에 제사 올리는 시. 해서 인간적 울림뿐 아니라 적과 귀신까지 감읍케 하여 물리치고 해와 달도 가던 길을 멈추게 하는 우주적 울림으로 나아가는 시들은 오늘도 쓰여지고 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읍니다" 는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의 역설이 일제의 암흑에서 해방의 빛을 보게 했다.

유신 아래서의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에 쓴 '민주주의' , 경악해 악 소리도 못지른 5.18 직후 터져나온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우리들의 십자가여' 등 말을 섬기는 많은 시들이 전인류와 산천초목을 울리며 오늘 이만큼의 '민주주의' 라도 이끌어냈다.

18일 본지 1면에는 남북 최고의 시인인 고은.오영재 시인의 '최초의 남북합작시' 가 실렸다.

"북의 시인이 말했습니다/우리는 시로써 통일로 나아갑시다/남의 시인이 말했습니다/우리는 통일로써 새로운 시를 씁시다" 며 시로써 통일을 앞당기고 그 너머 통일민족의 앞길까지 밝히자고 했다.

두 시인은 시의 혈육이었기에 첫 만남에서 나눈 대화를 그대로 옮겨놓아도 훌륭한 합작시가 될수 있었다고 밝혔다.

"아 집으로 초대하여 밤 이슥토록/술잔에 얼굴 붉어진 기쁨이었으면/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고 그 시는 헤어짐의 아픔까지도 7천만 민족을 대신해 속 깊이 울고 있다.

두 시인은 이제 다시 남북으로 각각 헤어졌다.그러나 온 영혼으로 말을 섬겨 그 말을 함께 사용하는 민족의 마음을 엮는 시를 써낼 것이다.그리고 그 시들은 통일을 부르고 하나된 민족의 앞길을 쓸어나갈 것이다.

이경철 문화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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