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러시아 잠수함 승무원 거의 숨진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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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 12일 노르웨이 북쪽 바렌츠해에 침몰한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승무원 1백18명 중 70% 이상이 이미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등 대참사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서방의 구조 지원 제의를 뒤늦게 받아들인 러시아 당국의 태도가 희생 규모를 확대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국내외 언론은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소련 시절의 구태를 벗지 못하고 사고 원인과 실태를 은폐하려 했다" 고 비난하고 나섰다.

◇ 불신받는 당국 발표〓일리야 클레바노프 러시아 부총리는 사고 발생 닷새가 지난 17일에야 쿠르스크호의 침몰 추정 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커다란 미확인 외부 물체와 충돌한 결과 강력한 폭발과 함께 선체에 큰 구멍이 생겼으며 이로 인해 잠수함이 곤두박질해 해저에 처박히면서 두번째 폭발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러 해군은 사고 당시 폭발음을 들었다는 미 함정의 보고에 대해 "탐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 며 폭발로 인한 침몰 가능성을 애써 무시해왔다.

또 클레바노프는 이날 "승무원들이 사고 당시 대부분 충격을 받았던 구역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며 일부 승무원들의 대피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매우 절망적인 상황임을 실토했다.

서방의 지원의사를 거부하며 구조를 자신했던 러 정부의 모습은 간 데 없다.

러 당국은 사고 발생 시간도 처음엔 13일이라고 했다가 미국 관계자들이 12일이라고 밝힌 후 말을 바꿨다.

잔존 산소량에 대해서도 처음엔 18일이면 바닥이 난다고 했다가 구조 작업이 지연되면서 25일까지는 남아있을 것이라고 정정했다.

◇ 계속되는 비밀주의〓러시아의 일간신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이미 며칠 전에 찍힌 잠수함의 비디오 테이프 분석이 그렇게 오래 걸렸을 리 없다며 "푸틴 대통령은 과연 5일 동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가" 라고 반문했다.

BBC방송도 "러 당국이 사건 발생 사실을 알게 된 후 24시간 이상 지나서야 국민에게 공개한 것은 러시아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지 10년이 지나도록 국민들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있는 처사" 라고 지적했다.

인명보다는 군사기밀을 중시하는 '비밀주의' 가 아직도 러시아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도 "푸틴의 약속과 달리 이번 사건이 '새로운' 러시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고 보도했다.

◇ 구조 경과〓러시아 해군은 지난 15일부터 4대의 구조용 캡슐을 동원해 쿠르스크호와 접속을 시도했으나 악천후로 모두 실패했다.

한편 노르웨이 유조선에 실린 채 노르웨이에서 사고현장으로 떠난 영국의 구조용 잠수정 LR5는 빨라도 19일에야 사고해역에 도착할 전망이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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