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중·고등학생 국어경시대회] '속이 꽉찬 글' 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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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제6회 전국 중.고등학생 국어경시대회(주최 :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 후원 : 교육부.중앙일보) 최종 입선자가 지난 10일 발표됐다. 두차례 지역 예선을 통과한 2백50여명의 학생들이 경쟁한 본선에서 경기 진성고 3학년 김민경(19)양과 서울 노곡중 3학년 노선(16)양이 고교생부와 중학생부 최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민경양의 '듣기, 읽기, 쓰기' 영역의 답안과 함께 채점위원의 총평을 싣는다.

(고등부 문제) '탁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영화 '아버지' (1997년/감독 장길수)에는 가족관계의 문제점들이 나타나 있다. 이를 참조해 오늘날 우리 가족 관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지 밝히고, 그 해결책을 논하시오. (제목을 반드시 붙일 것, 김수영의 시를 이용할 것)

(답안) 제목 :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의 공동체, 가족

얼마전 일어났던 이은석이라는 학생의 부모 살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이 사건은 폭풍의 전야처럼 고요하기만 하던 우리 사회의 가족 관계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중략) 우리는 이 시점에서 가족문제로 인해 일어나는 또다른 사건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의 가족관계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만 한다.

'탁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영화 '아버지' 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띠고 있다.

탁류에서는 자식을 내세워 물질적 부를 쌓으려는 부모가 등장하고 있으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표드르 역시 가족에 대한 개념조차 확실치 않은 인간형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반이나 알료사 등도 서로에게 그리 큰 가족애를 느끼지 못한다. 영화 아버지에서는 가족에게 무관심한 아버지를 가족들이 불신하고 미워하는 형태로 그려지고 있다. 이들 세 가족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은 무관심과 상호이해 부족이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이해해 주기를 바라기만 한다. (중략)

이것은 소설 속 가족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족관계에서 역시 가장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가장 따뜻하고 돌아가고 싶어야 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무관심과 이해부족이라는 커다란 장애물로 인해 소리없이 무너지고 있다.

그러면 가족이라는 사랑의 공동체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첫번째로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랑은 너와 내가 있음을 알고 너와 내가 함께 모여 공동체를 이루게 해준다. 사랑은 결코 상대방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으며, 서로를 융화시킨다. 또한 사랑은 서로의 독립성 역시 보장해 준다. 이러한 양면성을 가진 사랑이야말로 무너져가는 가족관계를 확고히 지켜주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두번째로 가족관계의 문제점을 위해 필요한 것은 대화다. 오늘날 가족문제가 생긴 이유는 바로 대화의 단절이다. 가족문제로 떠오른 무관심과 상호이해의 부족은 바로 이 대화의 단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화를 하지 않으면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떤 것을 바라는지 알 수 없다.

이은석군의 부모 살해 역시 대화 부족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었다.(중략) 누구 한 사람의 입김이 아니라/모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 것/그것은 저 넓은 문창호의 수많은/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겨울바람보다도 나의 눈을 밝게 한다/는 '나의 가족' 이란 김수영의 시처럼 가족은 결코 나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닌 함께 이루어 나가는 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나의 가족' 의 또다른 구절인,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이것이 사랑이냐/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라는 말처럼 우리 사회의 가족 관계에서도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 또한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가족이라는 것은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기초가 되는 존재이다.

최근 등장한 광고 중 이런 광고가 있다. 한 마라톤 선수가 2등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TV를 통해 가족을 보고 힘을 내 1등이 된다는 내용이다. 그 마라톤 선수가 본 것은 멋있게 보이는 커다란 TV가 아닌 바로 가족이었다. 가족은 이처럼 가족의 구성원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존재다.

우리가 가족간의 사랑을 회복하고 대화의 기회를 자주 갖는다면 영화 '아버지' 와 같은 소외된 아버지도, 부모살해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의 공동체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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