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 실려 '지각 상봉'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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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어머니, 저 기억하시겠어요. 외삼촌 집에 맡겨놨던 상원이에요." "큰아들 운봉이가 왔습니다. 알아보시겠어요."

살아생전 북의 아들과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에 두 어머니가 아픈 것도 잊은 채 구급차를 타고 밤길을 달려왔다.

▲박성녀씨가 15일 밤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까지 타고 간 구급차 안에서 북에서 온 아들 여운봉씨를 만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Joins.com 8·15 이산가족 상봉 포토뉴스

15일 오후 10시50분쯤 북측 방문단 숙소인 서울 워커힐 호텔로 구급차에 실려 도착한 朴상원(65)씨의 어머니 閔병옥(95.충남 천안시)씨와 呂운봉(66)씨의 어머니 朴성녀(91.충북 청주시)씨.

노환으로 거동이 몹시 불편해 코엑스 상봉장에서 대면할 수 없던 이들은 통일부에 간청, 이날 밤 구급차 안에서 극적인 만남을 가졌다.

朴씨는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넙죽 큰절을 올렸다.

"어머니, 저 대학도 나오고 결혼도 해서 아이들도 낳았어요. 어머니 뵈면 드리려고 이불감도 끊어왔어요. "

하도 가난해 '좀 형편이 나은 집에 보내면 배는 곯지 않겠지' 싶어 오빠집에 맡겨놨다가 의용군에 끌려가는 통에 생이별한 모자였다.

어머니 閔씨는 "우리 늙은 늙은 애기가가 왔구나" 하며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呂씨의 어머니 朴씨는 기운이 없어 아예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많이 아프세요. 어머니가 그렇게 보고싶어하던 제가 드디어 왔는데…. " 담요를 덮은 채 누운 어머니는 마지막 힘을 짜내 아들의 얼굴을 손 끝에 새겨놓기라도 하겠다는 듯 손바닥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朴씨는 노환으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치매 증세까지 보여 얼마 전부터 주변 사람들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6.25 전쟁 당시 정미소에서 일하던 呂씨는 인민군을 따라나선 뒤 소식이 끊겼고 그후 朴씨는 아들을 기다리다 지쳐 1995년 사망신고까지 했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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