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점도씨 '유성기음반 총람' 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고단했던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복판을 살았던 민초들은 무엇으로 일상의 삶을 견디며 살았을까. 고관대작 아닌 이름없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마음자리와 정서가 연대기적 기록이나 정치경제사의 추상화된 통계 등에서 쉬 포착되지 않을진대는 그들 삶에 대한 복원은 아마도 대중문화 영역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작곡가 겸 가요연구가 김점도(65.가요사박물관장)씨가 선보인 '유성기 음반 총람자료집' (이하 '자료집' , 신나라 뮤직 간행)은 유행가에 관한 기초자료집 이상의 무게로 다가선다.

거대담론의 그늘에 가려 빈곤했던 것이 사실인 민중생활사 연구에 실마리를 던져주는 역작으로 평가할 만한 것이 이 '자료집' 이다.

현학적으로 말하자면 요즘 역사학의 한 방법론으로 유행하는 신문화사 내지는 미시사의 접근에 해당한다.

1907년 이후 1943년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유성기 음반(SP)형태로 발매됐던 대중가요.창가.만담.클래식음악이 가나다 순과 레코드 회사별 등 두가지 방식으로 각각 정리된 '근대 대중정서의 보고(寶庫)' 가 이 책이기 때문이다.

'자료집' 첫 장을 열어보자. 첫장 첫 줄은 유행가 '가거라 똑딱선' 에 관한 기초정보. 발매일 1940년 9월, 레코드사 이름 '오케' , 조명암 작사 이봉룡 작곡에 노래는 이난영. 몇줄 내려가면 '가난 타령' 이 보인다.

판소리 명창 임방울이 불렀던 단가(短歌)장르의 이 곡은 1930년 1월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출반됐음을 밝히고 있다.

장르별로는 아무래도 대중가요가 주종. 단 신민요.만담.난센스.동요.민요까지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시인 김안서, 작곡가 홍난파.손목인 등의 이름도 자주 보인다.

'자료집' 에서 다룬 유성기 음반은 6천장 분량. 수록된 작품은 1만2천여곡이다.

이들 6천장은 6.25 같은 사회변동에 따라 보관이 극히 취약했다는 점에서 '인멸 직전에 건진 보물' 에 해당한다.

김씨는 이들 자료를 어떻게 구했을까. 우선 자신이 소장한 음반이 2천여장이다.

여기에 기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신나라 레코드의 3천여장이 합쳐졌고, 민영철씨 등 개인 소장가의 음반 1천여장이 기본자료 역할을 했다.

김씨는 "이 기초작업을 몇차례 포기할까 했지만 10년 가까운 작업 끝에 완성을 봤다" 면서 미처 소화가 안된 개인소장가들의 자료가 입수되는 대로 개정판을 만드는 작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또 해방 이후 자료집은 별도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조우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