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가 부친 공적 아들이 찾아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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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증거 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항일운동가의 공적이 아버지를 고문한 일제 경찰을 끈질기게 추적한 아들의 노력으로 뒤늦게 햇빛을 보게 됐다.

주인공은 15일 55주년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을 받는 이광우(李光雨.75.부산시 동구 좌천동)씨와 차남 상국(相國.41.회사원.경남 거제시)씨.

李씨는 1942년 5월 부산진 공립보통학교 동기생 5명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조직 '친우회' 를 결성, '일본은 망한다.

조선은 독립해야 한다' 는 내용의 유인물을 조선방직 등 공장지역에 배포하다 이듬해 3월 일제 경찰에 검거됐다.

'당시 경남토건협회 사원이던 '李씨는 울산공산당 사건과 연계시키려는 일본경찰로부터 10개월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으며, 단기 1년.장기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김천 소년형무소에서 2년여를 복역하다 광복을 맞았다.

李씨는 뒤늦게 89년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신청서를 제출했다.

' 경찰청 전과조회를 통해 일제 때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검거된 기록 등을 증거자료로 첨부했다.

' 그러나 보훈처로부터 심사를 유보한다는 답변이 날아왔다.

' 기록만으로는 구체적인 공적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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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아들 상국씨는 아버지의 항일활동 자료 발굴에 나섰다.

직장일을 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국회도서관.정부기록보존소.한국정신문화연구원 등을 10여년간 찾아다녔다.

'

우선 가장 확실한 증거인 판결문을 추적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한국전 당시 소실돼 찾을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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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국씨는 사건 당시 부친을 검거했던 경찰 河모(88.부산 거주)씨를 찾아 사건 내용과 고문사실 등을 자백받는 일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河씨는 당시 경남경찰국 고등과 외사계 주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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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거 당시의 고문 후유증으로 두다리가 불편한 부친은 49년 8월 부산 반민특위 조사부에서 河씨로부터 고문당한 사실을 증언해 그에 대한 기억은 뚜렷했다.

'

상국씨는 지난해 9월부터 河씨 관련 기사를 찾기 위해 신문자료를 샅샅이 훑던 중 지난해 12월 한 지방신문에서 河씨가 97년 5월 노인복지에 기여한 공로로 부산시장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반민특위에 회부돼 재판까지 받았던 河씨는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풀려난 뒤 부산에서 상당한 재력가가 돼 있었다.

李씨는 결국 지난해 12월 河씨로부터 "친우회 불온 전단사건의 주동자 이광우를 검거해 조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문은 부하들이 했다" 는 진술을 받아내 아버지의 훈장을 찾아준 것이다.

부산〓김관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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