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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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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마오쩌둥(毛澤東)은 시인이기도 했다. 풍자적이고 호쾌한 시를 즐겨 썼다. 1965년 쓴 ‘염노교· 조아문답(念奴嬌·鳥兒問答)’이 대표적이다. ‘염노’는 당(唐) 현종의 총애를 받았던 가녀(歌女)다. 아리따운(嬌) 염노의 입을 빌려 당시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수정주의를 풍자한 시다.

백미는 말미다. ‘푹 익은 감자에 쇠고기도 넣었군. 그렇다고 방귀는 뀌지 말게. 세상 뒤집어지는 모습 한번 보자꾸나(土豆燒熟了, 再加牛肉, 不須放<5C41>, 試看天地飜覆)’

1964년 4월 1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흐루쇼프가 “공산주의는 쇠고기 감자 요리 한 접시를 필요로 한다”며 이른바 ‘복리 공산주의’를 주장한 것을 정면으로 치는 말이다. 시가 나온 뒤부터 ‘쇠고기 감자’는 중국에서 ‘슈쑤(修蘇-소련식 수정주의)’의 대명사가 된다. 누구도 감히 쇠고기 감자 요리를 먹지 못했다. 세상은 변했다. 후원(胡溫-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체제가 추진 중인 신정(新政)은 분명 복리 공산주의다. 최저생활을 보장한 디바오(低保), 공공재의 농촌 집중을 겨냥한 샤샹(下鄕) 정책 등 여러 사례가 있다.

복리를 강조하면 인민이 중요해진다. 최고지도층의 인민 챙기기가 자연 각별해지는 이유다. 대표 주자는 원 총리다. 원 총리는 새해 1일 폭설과 영하 28도가 넘는 혹한을 뚫고 동북으로 날아가 다칭(大慶) 유전을 찾았다. ‘고난도 죽음도 두렵지 않다(一不<6015>苦, 二不<6015>死)’는 구호로 유명했던 곳이다. 원 총리는 한파와 눈바람을 넘어 시추 기술자의 손을 잡았다. 이들과 어깨를 맞대고 감자닭고기찜, 두부배추조림, 유채볶음 3찬을 놓고 밥도 먹었다. 지난해 춘절(春節) 기간에는 폭설로 전기가 끊기고 도로가 막혀 귀성객 수십만 명이 역 대합실 등지에서 이틀씩 밤을 지새웠다. 원 총리는 사흘 내내 후난·후베이·광저우의 기차역과 버스 정류장을 돌며 “여러분께 죄송하다. 열심히 복구 중이다. 조금만 참아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지치고 상처받은 인심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이 순간 중국의 ‘행복 GDP’는 쑥 올라갔을 것이다.

4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연설 항목엔 100년 만의 눈폭탄에 짓눌린 민심은 없었다. 국무회의 참석자들에게 “(이럴 땐) 지하철을 타면 된다”고 했을 뿐이다. 지하철도 속수무책인데 말이다. 피난민처럼 눈길을 걸어 출근한 시민들이 이 말을 어떻게 들었을지 궁금하다.

진세근 탐사 2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