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통일의식 조사] "북에 대한 인식변화 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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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여론조사 결과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대다수 국민이 통일의 당위성을 지지한다는 점이다.

통일문제는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민주주의 정착 및 경제의 선진화와 함께 가장 중요한 의제의 하나임이 확인됐다.

국민의 압도적 다수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을 지지하고, 특히 남북 정상회담과 후속조치 이후의 남북관계 개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밝은 전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에 대한 지지와 평가에 있어서 비록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영.호남간에 상당한 편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역주의가 국내정치뿐 아니라 민족문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특기할 사항은 정상회담과 일련의 후속조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대다수 국민이 최근의 남북관계를 '분단과 대결의 시대' 를 넘어 '평화공존과 협력시대' 의 개막을 알리는 것으로 긍정 평가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들은 북한을 이제 적대대상이 아닌 협력과 도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뚜렷한 인식 변화를 보여줬다.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서는 남북한 당사자가 중심이 되고 주변 관련국의 참여가 보장되는 형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보였다.

조사에서는 특히 젊은 세대가 남.북한의 주도권을 강화하고 대미 편중에서 벗어나 균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면서 미국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은 노근리.매향리 문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문제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한반도 평화.통일과정에서 주변 4강의 역할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정부로서는 대외정책의 특성상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신중히 처리해야 할 것이다.

경제사회협력 분야에서는 남북한이 각기 장점을 살려 통합적 경제권역을 이뤄 궁극적으로는 민족경제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대다수 국민은 남북경협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다만 경협의 원칙과 관련해 시장경제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전개해야 한다는 조심스런 입장이었으며 남한의 능력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쪽을 선호했다.

이는 한국경제사정이 아직 기업.금융의 구조조정 등 해결해야 할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국민들은 정치적으로는 전향적인 반면, 경제적으로는 보수적 시장주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 식량.비료 지원은 철저한 '상호주의 원칙' 보다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계속 지원하되 궁극적으로는 남북관계 개선 정도에 의존해야 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본 최대 관심사는 역시 이산가족 상봉으로 나타났고 상봉규모가 계속 확대되기를 바라고 있다.

끝으로 국민은 현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을 지지하면서도 정책상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점도 명백히 인식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은 정부의 대북정책이 국내에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며 정상회담 이후 남한 내의 갈등이 심화하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향후 대북.통일정책과 관련해 여야간 초당적 협력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히 앞으로 있을 대규모 대북지원과 협력에 국민적 지지와 동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회에서 남북특별위원회 같은 초당적 기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반적으로 정상회담이 국민의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인식의 변화와 현실의 변화가 맞물려 선(善)순환이 이뤄져야 역사가 발전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남북한 당국자들과 정치인들이 깊이 되새겨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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