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일 기자의 산을 오르며…] 지리산 산장의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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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쪽 엉덩이뼈와 어깨가 욱신욱신하다. 모로 누운 지 삼분이나 됐나. 몸을 반대로 돌리려는데 여의치 않다. 오른쪽에는 늙직한 아저씨의 불룩한 뱃구레가, 왼쪽에는 젊은 친구의 궁둥이가 걸린다.

양 옆의 몸뚱이를 잠깐 밀어내려면 용을 써야 한다. 뒤집기할 힘을 모으기 위해 잠시 숨을 가다듬는다.

지리산 속에 있는, 한 작은 산장의 밤. 태풍에 쫓긴 등산객들이 꽉꽉 들어찼다. 부시럭부시럭, 웅절웅절…. 어둠 속에서 시커먼 형체들이 꾸무럭거린다. 밖에서는 쏴쏴, 바람비가 휘뿌린다. 오후 늦게 시작한 태풍의 행차가 밤새 계속되고 있다.

허벅지 위로 묵직한 게 턱, 얹힌다. 막 몸통을 뒤집을 참에 선수를 뺏겼다. 오른쪽 아저씨가 다리를 올린 것이다.

자기 안방처럼 옆 사람에게 발을 걸치는 용기가 무지막지하다. 손으로 힘껏 다리를 밀치며 잽싸게 뒤집기하는데 성공했다. 장골의 통증이 가시어 한숨 돌린다.

이 자세로 몇 분을 견딜 수 있을까. 이번엔 숨을 들이쉬기가 불편하다. 왼쪽 청년도 몸을 돌리는 바람에 아랫배끼리 맞닿는다.

열 명이 누울 침상에 열여섯이 몰렸으니 지그재그로 엇누워 칼잠을 자도 사이가 뜨지 않는다. 숨을 한박자 늦춰본다.

들락거리는 사이클이 엇갈려 배와 배의 부딪침이 덜하다. 부대낌이 싫은지, 자리를 뚫을 엄두가 안 나는지, 아예 벽에 등을 댄 채 무릎에 머리를 박고 있는 사람이 넷이다.

덜컥, 문소리가 났다. 두 사람이 들어오고 이 층 침상 쪽이 수런수런해진다. 이 밤중에 빗속을 걸어 도착한 여자가 있었다.

"이 사람은 그럼 밖에서 비를 맞으란 말입니까?" 산장지기의 격한 목소리다. 한 사람 자리를 내야 하는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다.

"여러분, 이러시면 당장 모두 일어나야 합니다." 재차 으름장을 놓는다.

태풍은 무섭다. 계곡에 급류를 만들고, 절벽의 바위를 굴리는 파괴력이? 사람마다 제 한 몸 구겨넣는, 옹색한 관을 만들고 안에서 못을 지르게끔 하는 마력이 무섭다.

머리맡의 랜턴을 켜 시계를 본다.

열 시…. 새벽은 올 것인가. 몇 분마다 시각을 확인하며 밤이 깊어가는 것을, 그 숨막히는 고통을, 채를 썰듯 음미할 일이 아뜩하다.

더 겁나는 게 있다. 아침이 되면 하룻밤 잠자리가 불편했다고 누가 목에 힘줄 돋우면 어쩌나. 찻길을 뚫고 케이블카를 놓자고 하듯이, 작은 산장을 뜯고 근사하게 새로 지으라고 말이다.

저마다의 관에 박힌 녹슨 못을 뺄 수만 있다면 지리산 능선에 수영장을 만든다고 마다할 리가 ... 칼잠 자세로도 곯아떨어진 사람이 차라리 부럽다.

치~푸~, 치~푸~. 향수의 증기 기관차를 혼자 끌고 꿈길을 달리는 무신경이 밉살스럽고도 무던하다.

배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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