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상식 밖 세금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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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병기 경제부 기자

명절 때마다 친척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음식을 나누며 시국담을 주고받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올 추석연휴 기간에는 단연 경제 문제가 전국적으로 최대 관심사였다. 그러나 서울에선 수도 이전 반대 '관제 데모'논란을 둘러싼 열린우리당과 이명박 서울시장 사이의 기 싸움이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다.

이 시장은 지난달 24일 "세금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걷히는데 정부가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이곳 국민의 세금을 걷어다가 수도 이전 홍보에 쓰고 있다"고 비난했다. 수도 이전 반대운동에 서울시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열린우리당이 연일 "수도 이전 반대운동에 서울시가 예산을 전용하고 있다"고 맹공을 가하자 아예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데 시 예산을 지원하는 게 무슨 잘못이냐'며 정면으로 되받는 형국이다.

시중에서는 "국가 정책을 반대하는 일에 서울시가 예산을 쓰는 것은 국법을 위배한 것"이라는 지적에서부터 "서울시가 걷는 세금을 서울시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격한 반응까지 나왔다.

논란이 거세지다 보니 수도 이전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은 사라지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때아닌 예산권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세금과 예산집행의 문제가 계속 정쟁의 대상이 될 경우 시민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지방자치제의 본 뜻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현행 세법에서는 엄연히 국세와 지방세가 나뉘어 있고, 예산의 배분은 국회에서 매년 정하도록 돼 있다.

세금을 걷는 일과 예산을 쓰는 일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재정의 배분기능을 통해 지역이기주의를 넘어 국가적인 통합을 이루자는 뜻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수도이전 논란이 "우리가 거둔 세금은 우리가 쓰자"는 식의 잘못된 지역이기주의로 흐를 경우 지역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국민화합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세금과 예산을 두고 상식을 벗어난 논쟁이 계속될 경우 나라살림의 기본틀인 국가 재정에 대해 오해와 불신이 싹틀 수 있다는 것이다.

홍병기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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