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상봉단 판문점 통해 오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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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산가족 상봉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헤어진 부모.처자나 형제들을 만나려 나서는 가족들의 가슴 설레는 이야기들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슬픈 가족사를 통해 이념과 전쟁이 만들어 놓은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새삼 느끼면서 이번에 가지 못한 이산가족들에게는 한시바삐 2차, 3차 상봉의 기회가 주어지고 보다 상시적인 만남을 보장할 면회소 설치를 위해 남북 당국간 협의가 서둘러 이뤄져야 함을 촉구해마지 않는다.

상봉과 교류, 생사 확인의 절차를 보다 신속하게 진행하려면 판문점을 면회소나 교류의 통로로 이용하는 것이 더 원활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1차 상봉에 양측 모두 판문점을 통하지 않고 항공편을 이용한다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지난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북 이후 언론사 사장단도 비행기편으로 중국 베이징(北京)을 경유해 평양에 가는 등 북한측이 남북 교류의 통로로 판문점을 기피하려는 기색을 보이는 데 대해 우리는 적잖이 마음이 쓰인다. 현대가 인솔하는 소떼들은 판문점으로 가는데 왜 사람들은 다른 통로를 이용하는지 모르겠다.

북한이 혹시 판문점 정전회담에서 남측 대표를 인정하지 않듯 남쪽 당국과의 교류 통로로 판문점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워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평화체제나 군사문제와 같은 것은 미국측과만 협의하고 남쪽에 대해서는 그밖의 문제, 즉 인도적 교류나 경협 또는 민간차원의 교류만 인정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 단장으로 최덕신(崔德新)씨의 미망인이 선정된 점도 마뜩지 못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북측이 애당초 월북자 중심으로 상봉단을 선발한 데 대해서도 '마음의 연좌제' 를 푸는 자세로 맞아야 함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崔씨와 그의 부인은 3공 시절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5공 때 남쪽 정부를 비방하고 북쪽으로 넘어간 사람들이다.

또 미망인 유미영씨는 한때 문제 됐던 천도교교령 월북사건과 관련된 혐의까지 받은 적이 있어 국민의 감정이 아직 깨끗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만약 거꾸로 남측 상봉단 대표에 북에서 망명한 황장엽(黃長燁)씨를 내세운다면 북측은 어떤 낭패감을 맛볼 것인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배려가 필요하다. 순수한 인도적 차원의 상봉이 정치적 색채를 띠면 상봉의 본래 의미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이것이 도가 지나치게 되면 일부에서 주장하듯 사상의 무장해제를 노린다거나, 아니면 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가치관의 혼란을 조장하려고 한다든가 하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는 미묘한 '사건' 인 만큼 적십자 관계인사들이 상봉단을 이끌도록 한다든지 절차상 문제에 대해 양측이 더 협의하고 더 신경을 쓰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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