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후배 사랑 … 고려대 경영대 첫 여성 졸업생 전윤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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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1955년 2월, 한 여성이 한국은행에 입사했다. 고려대 경영대가 배출한 첫 여성 졸업생 전윤자(78·사진)씨였다. ‘25년 이상 일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입사할 만큼 여성의 사회 진출이 드문 시절이었지만 전씨는 그 뒤 50여 년을 금융계에서 활동했다.

그런 전씨가 5일 “여성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며 모교에 5억원 상당의 건물을 기부했다. 고대 측은 전씨가 기부한 건물의 임대 수익금으로 매년 경영대 소속 여학생 3~4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2011년 완공 예정인 신경영관에는 그의 이름을 딴 여학생 휴게실을 만들 계획이다.

전씨가 기부를 마음먹은 것은 “후배들이 새로운 업무와 분야에 자신감을 갖고 도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그가 입학할 당시만 해도 학교 전체에 여학생이 세 명뿐이었다. 그는 “남학생들이 강의를 듣지 못할 정도로 괴롭혀 여대로 옮기려고 지도 교수를 찾아간 적도 있다”고 했다. 전씨가 은행 퇴직 뒤 여성 전용 금융기관을 만들어 미혼 여성과 미혼모를 위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도 소수자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고려대 전체 재학생의 36%가 여성이다. 전씨는 “시대가 변했고 이제 많은 여성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며 “더욱 분발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씨는 2005년에도 외국인 학생을 위한 기숙사 건립에 쓰라며 모교에 5000만원을 기부했다. 사별한 남편이 남긴 재산 중 일부였다. 또 “체험학습 나온 학생들이 보고 공부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남편의 뜻에 따라 희귀 조개 화석 1200여 점을 진도해양생태관에 기증했다.

전씨는 이날 장학금 기부식에서 경영대의 첫 여성 학생회장인 박조은(22)씨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전씨는 “여학생이 학생회장까지 하다니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박씨는 “여학생을 위한 장학금을 내놓으신 데에는 특별한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성으로서 더 도전하고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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